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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03
2019.03.02 14:54

김동우 Kim Dongwoo 사진전

조회 수 193 추천 수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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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제목 ‘뭉우리돌’을 찾아서
전시기간 2019. 2. 26 ~ 3. 17
전시장소 류가헌 Ryugaheon 전시1, 2관, Seoul
오프닝 2019년 2월 26일 (화) 오후 5시
갤러리 주소 서울특별시 종로구 청운동 113-3(자하문로 106) 02-720-2010
갤러리 홈페이지 http://www.ryugaheon.com
주최 3.1운동 100주년 기념사업 추진위원회
일제강점기는 내게 ‘슬픔’이란 명사뿐이었다. 구체적 내용이 머릿속에 남아 있지 않았다. 시험에 나오지 않는다는 이유로 철저하게 배제된 이야기들, 불과 100여 년 전 나라 잃은 역사이질 않나. 줄곧 흐리멍덩하게 과거에 대한 갈증을 느끼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인도를 여행하고 있었다. 그런데 뉴델리 레드포트가 우리 광복군이 영국군과 함께 훈련하던 장소라고 했다. 머리털이 쭈뼛 섰다. 해외 독립운동 사적지를 뒤져보니 유럽에서 중미까지 내 예상을 뛰어 넘는 범위였다. 그 전까지 우리 독립운동사를 너무 좁은 의미로 이해하고 있던 셈이다. 간질간질한 무엇인가가 가슴에서 퍼져 나갔다. 세계일주를 하고 있던 난 계획을 송두리째 변경했다.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독립운동 현장을 찾아 헤매는 여행의 시작이었다. 가는 곳마다 독립운동가 후손을 수소문하기 시작했다. 대사관에 연락도 해보고 이도 여의치 않으면 한인회를 찾아갔다. 한국인 선교사에게 도움을 청할 때도 많았다. 세계 곳곳에 보석처럼 박힌 그들을 찾아내는 일은 인내를 필요로 했다. 촬영은 그 다음 문제였다. 기다림 끝에 연락이 닿아도 말이 통하지 않았다. 어렵사리 통역을 구해 그들을 만나면 하나 같이 따듯하게 날 안아주었다. 이야기를 하다 말고 김치를 꺼내와 내 입에 넣어준, 차 한 잔으론 부족해 밥상을 내온 할아버지·할머니들. 그들은 대한민국의 오늘을 뿌듯해 했고 보람 있어 했다. 민족이 무엇인지, 자신의 뿌리가 어디서 비롯된 것인지, 확고한 정체성을 갖고 있는 그들을 통해 독립운동은 과거가 아닌 현재를 살고 있었다. 뭉클한 만남 이후에는 사적지를 찾아 나섰다. 지도가 정확치 않거나 주소가 틀리게 표기된 곳이 많아 헛걸음은 예삿일이었다. 그중에서도 이름 하나, 사진 한 장 들고 독립운동가의 묘지를 찾는 건 꽤나 어려운 과정이었다. 그만두고 싶을 때쯤 찾던 비석을 발견하면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다. 그러다 표지판 하나 없이 터만 남아 있거나 완전히 풍경이 바뀐 장소에 닿으면 알아듣지 못하는 외국어를 듣는 것처럼 멍하니 초점이 흐려졌다. 애써 이해하고 싶고 한발 더 다가가고 싶어도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는 장소들이었다. 이렇게 저렇게 카메라를 옮겨 봐도 공간을 제대로 해석하고 있는지 확신할 수 없는 시간이었다. 고백하건대 이 작업은 내게 역부족이었다. 때론 감정 소비에 지쳐 집에 돌아갈 이런저런 구실을 찾기도 했다. 그럼에도 작업을 놓을 수 없었던 건 역설적이게도 최소한 돌아갈 구실을 찾는 여유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찾아 헤맨 그들은 돌아갈 나라조차 없지 않았나. 나도 몰래 감정이 불나방처럼 춤추는 걸 애써 진정시켜야 했던, 역사 공부를 손에서 놓지 못하게 했던 무수히 많은 밤을 지내고 보니 독립운동과 관련된 중국·인도·멕시코·쿠바·미국·러시아·네덜란드·카자흐스탄·우즈베키스탄 등 9개국을 여행 한 뒤였다. 한국에 돌아와 행려병에 걸린 사람처럼 한동안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들끓던 감정이 좀 가라앉았으면 했다. 조금 편하게 농담을 섞어가며 이야기하고 차분하게 작업 내용을 복기하고 싶었다. 그렇다고 너무 식지 않았으면 했다.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일본과 만주에 남아 있는 독립운동사를 찾아 훌쩍 떠나야 하니까. 왜 이 감정의 칼춤 앞에 또 서려는지 모르겠지만…. 이 작업은 우리 스스로 잃어버린 혹은 잊어버린 역사를 소환하고 증거하고자 했던 시도다. 우리가 오롯이 기억하고 살펴야 할 과거이자 현재 말이다. 작업 시작은 우리 역사에 대한 무지에서 출발했지만, 끝은 독립운동에 대한 진심으로 갈음했으면 한다.
  • ⓒ김동우 Kim Dongwoo
  • ⓒ김동우 Kim Dongwoo
    1. 인도레드포트01
  • ⓒ김동우 Kim Dongwoo
    3. 김구 거주지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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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치장 충칭 화상산 한인묘지 토교 한인촌터-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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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 애니깽 농장-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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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 멕시코 김기창 가게터-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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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 과달라 하라 프란세스호텔-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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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 독립운동가 이윤상의 딸 레오나르 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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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8. 노백린 장군 손녀 노영덕님-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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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8. 윌로스 비행장(노백린 장군 손녀 노영덕 포함)-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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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5. 뉴욕 이우석의 딸 이춘덕-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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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8. 김알렉산드라 처형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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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0. 자유시 참변터-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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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4. 독립운동가 강상진의 후손-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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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5. 이준열사 묘적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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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6. 우슈토베-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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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7. 황운정의 묘-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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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1. 계봉우 아들-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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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2. 쉽켄트 최봉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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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2. 쉽켄트 최봉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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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7. 최재형 외증손녀 타트리야나 박-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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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3. 최호림 묘소-1

중국에서 중앙아메리카까지, 세계에 남겨진 독립운동의 흔적을 쫒다
- 오는 2월 26일부터 갤러리 류가헌에서


‘뭉우리돌’은 둥글둥글하게 생긴 큰 돌을 뜻하는 우리말이다. 지금은 사라지고 거의 쓰이지 않는 이 말은, 김 구 선생의 [백범일지]에 뚜렷한 상징으로 박여있다. 서대문형무소에 투옥된 김 구는 일제 순사로부터 “지주가 전답에서 뭉우리돌을 골라내는 것이 상례”라며 고문과 함께 자백을 강요받을 때 “오냐, 나는 죽어도 뭉우리돌 정신을 품고 죽겠고, 살아도 뭉우리돌의 책무를 다하리라” 다짐했다.

올해는 3.1운동 100주년이 되는 해이자 임시정부수립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더 이상 뭉우리돌이라는 단어가 일상에서 쓰이지 않듯이 겨우 100여년 밖에 지나지 않은 ‘나라 잃은’ 역사를 우리의 일상과 오관은 감각하지 못한다.

여행사진가로 세계 일주를 하던 청년 사진가 김동우가 문득 그와 같은 사실을 자각하고 부끄러웠던 것은, 인도 뉴델리 레드포트(Red Fort Complex)에서였다. 무굴제국의 요새로 알려진 레드포트가 임시정부의 독립운동사 중 빛나는 성과를 거둔 ‘인면전구공작대’가 훈련을 하던 곳임을 우연히 전해들은 그는, 중국 상해 임시정부를 주축으로 한 독립운동이 어떻게 이토록 먼 나라 인도와 연관되어있는지 의아했다.

의문을 쫒다보니 그동안 몰랐던 100년 전 역사의 여러 면면과 함께 유럽에서 중미까지 예상을 뛰어 넘는 범위로 독립운동유적지들이 산재해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그는 세계 일주를 멈췄고, 그때부터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독립운동의 현장들을 홀로 찾아 헤매는 여정을 시작했다. 여행사진은 자신이 아니어도 누군가 할 수 있지만, 이 기록은 누군가 대신해줄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홍범도 장군이 활약하던 연해주에서부터 사후에 한 기의 묘로 남은 카자흐스탄까지, 장군이 넘어야했던 7,000km를 사진가 김동우도 따라 넘었다. 독립운동을 하다 서른셋 나이에 처형된 ‘김알렉산드리아’가 처형 직전에 마지막 소원으로 우리나라 13도를 그리며 13발자국을 걸었던 러시아 하바롭스크의 ‘죽음의 계곡’ 무심한 바위 위를 김동우도 걸었다.

멕시코와 쿠바를 오가며, 독립운동자금을 임시정부로 보냈던 애니깽 농장의 노동자 ‘임천택’의 딸 ‘마르타 임’과 ‘이윤상’의 딸 ‘레오나르 이’를 비롯한 독립운동가의 후손들을 만났다. 2017년 4월부터 2018년 11월까지, 우즈베키스탄에서 네덜란드·미국·멕시코 등 9개국에 흩어져 있는 독립운동의 흔적들을 발로 쫒고 사진과 글로 기록한 것이다.

사진가 자신이 ‘뭉우리돌’ 정신이 없었다면 하기 어려웠을 이 지난한 작업이 전시와 한 권의 책으로 묶였다. 오는 2월 26일부터 사진위주 갤러리 류가헌에서 ‘3.1운동 100주년 기념사업 추진위원회’ 주최로 열리는 김동우 사진전 [뭉우리돌을 찾아서]. 해외 9개국의 독립운동 유적과 후손들을 집대성한 이 최초의 성과물은 3.1혁명 100주년을 맞아, 희미해져가는 우리 역사의 기억을 ‘기록’으로 분명히 할 것이다.
일제강점기는 내게 ‘슬픔’이란 명사뿐이었다. 구체적 내용이 머릿속에 남아 있지 않았다. 시험에 나오지 않는다는 이유로 철저하게 배제된 이야기들, 불과 100여 년 전 나라 잃은 역사이질 않나. 줄곧 흐리멍덩하게 과거에 대한 갈증을 느끼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인도를 여행하고 있었다. 그런데 뉴델리 레드포트가 우리 광복군이 영국군과 함께 훈련하던 장소라고 했다. 머리털이 쭈뼛 섰다. 해외 독립운동 사적지를 뒤져보니 유럽에서 중미까지 내 예상을 뛰어 넘는 범위였다. 그 전까지 우리 독립운동사를 너무 좁은 의미로 이해하고 있던 셈이다. 간질간질한 무엇인가가 가슴에서 퍼져 나갔다.

세계일주를 하고 있던 난 계획을 송두리째 변경했다.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독립운동 현장을 찾아 헤매는 여행의 시작이었다.
가는 곳마다 독립운동가 후손을 수소문하기 시작했다. 대사관에 연락도 해보고 이도 여의치 않으면 한인회를 찾아갔다. 한국인 선교사에게 도움을 청할 때도 많았다. 세계 곳곳에 보석처럼 박힌 그들을 찾아내는 일은 인내를 필요로 했다. 촬영은 그 다음 문제였다. 기다림 끝에 연락이 닿아도 말이 통하지 않았다. 어렵사리 통역을 구해 그들을 만나면 하나 같이 따듯하게 날 안아주었다.
이야기를 하다 말고 김치를 꺼내와 내 입에 넣어준, 차 한 잔으론 부족해 밥상을 내온 할아버지·할머니들. 그들은 대한민국의 오늘을 뿌듯해 했고 보람 있어 했다. 민족이 무엇인지, 자신의 뿌리가 어디서 비롯된 것인지, 확고한 정체성을 갖고 있는 그들을 통해 독립운동은 과거가 아닌 현재를 살고 있었다.

뭉클한 만남 이후에는 사적지를 찾아 나섰다. 지도가 정확치 않거나 주소가 틀리게 표기된 곳이 많아 헛걸음은 예삿일이었다. 그중에서도 이름 하나, 사진 한 장 들고 독립운동가의 묘지를 찾는 건 꽤나 어려운 과정이었다. 그만두고 싶을 때쯤 찾던 비석을 발견하면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다. 그러다 표지판 하나 없이 터만 남아 있거나 완전히 풍경이 바뀐 장소에 닿으면 알아듣지 못하는 외국어를 듣는 것처럼 멍하니 초점이 흐려졌다. 애써 이해하고 싶고 한발 더 다가가고 싶어도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는 장소들이었다. 이렇게 저렇게 카메라를 옮겨 봐도 공간을 제대로 해석하고 있는지 확신할 수 없는 시간이었다.
고백하건대 이 작업은 내게 역부족이었다. 때론 감정 소비에 지쳐 집에 돌아갈 이런저런 구실을 찾기도 했다. 그럼에도 작업을 놓을 수 없었던 건 역설적이게도 최소한 돌아갈 구실을 찾는 여유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찾아 헤맨 그들은 돌아갈 나라조차 없지 않았나.

나도 몰래 감정이 불나방처럼 춤추는 걸 애써 진정시켜야 했던, 역사 공부를 손에서 놓지 못하게 했던 무수히 많은 밤을 지내고 보니 독립운동과 관련된 중국·인도·멕시코·쿠바·미국·러시아·네덜란드·카자흐스탄·우즈베키스탄 등 9개국을 여행 한 뒤였다. 한국에 돌아와 행려병에 걸린 사람처럼 한동안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들끓던 감정이 좀 가라앉았으면 했다. 조금 편하게 농담을 섞어가며 이야기하고 차분하게 작업 내용을 복기하고 싶었다. 그렇다고 너무 식지 않았으면 했다.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일본과 만주에 남아 있는 독립운동사를 찾아 훌쩍 떠나야 하니까. 왜 이 감정의 칼춤 앞에 또 서려는지 모르겠지만….
이 작업은 우리 스스로 잃어버린 혹은 잊어버린 역사를 소환하고 증거하고자 했던 시도다. 우리가 오롯이 기억하고 살펴야 할 과거이자 현재 말이다. 작업 시작은 우리 역사에 대한 무지에서 출발했지만, 끝은 독립운동에 대한 진심으로 갈음했으면 한다.

사진, 독립운동 100년을 말하다


홀로 서 있는 나무 한 그루를 우리는 숲이라 부르지 않는다. 많은 나무가 함께 모여 있어야 생태계를 형성할 수 있고 더위와 추위를 막을 수 있다. 홀로 선 나무를 보면 비와 바람에 흔들려 뿌리가 뽑히고 결국 스러진다. 사람살이도 이와 같다. 가족공동체와 마을과 국가도 꼭 같은 이치를 갖는다. 안정적 환경이 오랜 세월 지속적으로 유지될 때 건강한 숲이 되고 노거수가 탄생하며 크고 깊은 숲이 만들어 질 수 있다. 그러자면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함께 살아갈 공동체를 유지해야 한다. 이 간단하지만 명징한 순리, 우린 그걸 100년 전에 몰랐던 것 같다. 그러니 100년이 지난 2019년 오늘, 우리는 일본에 침탈된 조국의 해방과 독립을 위해 목숨을 내놓았던 애국지사들과 독립 운동가들을 돌이켜 볼 수밖에 없다. 누란지세(累卵之勢)의 위기 앞에서 독립운동에 나섰던 그 큰 나무들이 아니었다면 지금 이 나라 대한민국과 아름다운 강산은 우리에게 없을 것이 자명하다.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이하는 2019년 새봄이 다가온다. 그 봄을 맞으며 전 세계에 이름 없이 산재한 독립운동 유적과 그 후손들의 삶을 서사 다큐멘터리로 작업한 김동우 씨의 사진을 마주하고 있다.
태평양 건너 쿠바에서 만난 독립운동가의 후손들이 사진 속에서 느리게 움직이고 있고, 안중근 의사의 단지동맹비는 김동우의 프레임을 통해 우리에게 달려 나온다. 시베리아의 바람은 100년 전 그때 독립 운동가들의 살을 엔 기억을 안고 다시 우리 앞을 불어 지난다. 장 노출로 연결시킨 100여 년의 시간이 사진 속에서 흐르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들 모두 김동우의 사진 속에서 말을 한다. 우리도 대한 사람이라고, 셀 수 없을 만큼 긴 세월 동안 피와 가슴 속에 간직한 민족혼을 꺼내 보인다.
중국과 인도를 지난 여정은 작가주의를 표방한 김동우의 이미지들을 품고 파미르(톈산산맥)고원을 넘는다.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은 물론 러시아와 네덜란드까지 이어지는 대장정은 서사 다큐멘터리임에 분명하지만 한편으로는 미학적 서사의 유려함이 흐른다. 다큐멘터리에 갇히지 않고 역경과 고난의 세월 속에 연해주를 비롯해 시베리아로 또 그보다 더 먼 인도차이나로 혹은 멕시코나 쿠바로 나섰던 독립운동가의 후손들을 우리와 만나게 하는 가교 역할을 하고 있다.
곁에서 지켜본 김동우 씨는 에너지가 넘치고 다재다능한 사람이라는 생각과 함께 그의 가슴속에 가득한 호기심이 내심 부럽기도 했다. 아니나 다를까 잘 다니던 직장에 사표를 내고 해외로 발걸음을 내딛던 날 “이번 여행에서는 사진가 김동우의 작업이 될 만한 프로젝트를 진행해보면 좋을 것 같아, 당신이 하고 싶은 말, 당신이 사진으로 그려내고 싶은 세상 이야기를 자신만의 시선으로 작업해 보면 좋을 것 같은 데”라는 부탁 아닌 부탁을 했던 기억이 있다. 그때 쓴 소주에 섞어 조심스레 건넨 말이 지금 보는 이 사진작업에 ‘김동우의 말’로 ‘김동우의 시선’으로 멋지게 표현되어 있다. 발로 찾아가 현장을 직접 보고 느낀 이번 사진 작업이 김동우 사진가의 탄생을 알리는 높고 큰 깃발이 되어줄 것이라 믿는다.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이한 올해.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독립운동가와 그 후손들의 발자취를 이처럼 대서사로 엮어낸 작업의 역사적 의미와 가치를 높이 평가하고 싶다. 역사의 소환이자 증거로 내민 이 다큐멘터리 작업이 사진가 김동우 개인의 작업을 넘어 우리들 삶의 이정표가 되어 주리라 믿는다.

2019년 새봄을 맞는 날.
강 재 훈(사진가)

김동우 Kim Dongwoo


필름 현상을 맡겨보니 사진이 한 장도 나오지 않은, 어설펐던 첫 촬영의 기억이 아직도 또렷하다. 대학에선 학보사 활동으로 사진과 인연을 이어갔다. 신문사 기자로 일하면서부터는 차츰 사진과 멀어졌다. 그러다 여행에 마음을 홀딱 빼앗겼고, 잊고 지낸 사진을 다시 하게 됐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세상을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기 시작한 게. 그 후 몇 번의 개인전과 단체전에 참여했다.
상식이 통하는,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는 사회를 꿈꾸며 잃어버리고 잊혀진, 바래고 물 빠진 것들을 카메라에 담는데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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