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엄마의 이야기입니다.
엄마는 서울대를 나온 형보다 지방대를 나온 나를 더 좋아하셨습니다. 명절 때 마다 친척들 앞에서 하신 말씀이니 믿을 만 하죠. 사진과를 졸업한 놈이 카메라 팔아먹고 섬을 떠돌며 바다낚시를 다닐 때,엄마는 보험설계사 일을 시작했습니다. 저 놈이 언젠가 다시 카메라를 잡을 터이니 필름 값을 댈 요량으로요. 의외로 숨겨진 역량을 발휘해서 필름 값은 물론 대학원 등록금도 아버지 몰래 대주셨습니다. 간혹 큰 계약을 하시면 시상이라는 명목으로 여행을 다니시는 걸 즐겼습니다. 재벌의 보험회사에서 시상을 받아 호주를 다녀 온 적도 있지요. 대략 20년 전의 일입니다.
엄마는 서서히 기억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흔히 말하는 치매환자입니다.
집을 찾아오지 못하고,손을 씻다 반지를 잃어버리고,10분 주기로 같은 말을 반복합니다. 정말 힘든 건 자신은 멀쩡하다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건강한 당신을 왜 병원에 가두어 두냐고. 몇 분간 언쟁이 오가고 몇 분간 침묵이 흐릅니다. 병원을 나와 부산역으로 가는 전철 안에서 저는 웁니다. 사람들이 이상하게 쳐다보지요. 효도라는 건 어울리지 않는 내가 엄마에 대해 고민을 한 것이 병원생활을 하고부터 입니다. 용돈을 드리고, 맛난 걸 사드리고, 짧은 여행을 같이 해도 엄마는 힘들어 하셨습니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엄마의 기억’을 더듬는 대화였습니다. 거창하게 카메라를 들이대고 조명을 설치해서 인터뷰를 하는 게 아니라,침대에 앉아 족발을 먹으며 둘이서 옛날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어디가 가장 가고 싶었는지,무엇을 가장 보고 싶었는지,누가 가장 보고 싶은지.
엄마의 창(窓)
박진영 (Area Park)
우리 엄마의 이야기입니다.
엄마는 서울대를 나온 형보다 지방대를 나온 나를 더 좋아하셨습니다.명절 때 마다 친척들 앞에서 하신 말씀이니 믿을 만 하죠.사진과를 졸업한 놈이 카메라 팔아먹고 섬을 떠돌며 바다낚시를 다닐 때,엄마는 보험설계사 일을 시작했습니다.저 놈이 언젠가 다시 카메라를 잡을터이니 필름 값을 댈 요량으로요.의외로 숨겨진 역량을 발휘해서 필름값은 물론 대학원 등록금도 아버지 몰래 대주셨습니다. 간혹 큰 계약을 하시면 시상이라는 명목으로 여행을 다니시는 걸 즐겼습니다.재벌의 보험회사에서 시상을 받아 호주를 다녀 온 적도 있지요.대략 20년 전의 일입니다.
엄마는 서서이 기억을 잃어가고 있습니다.흔히 말하는 치매환자입니다.
집을 찾아오지 못하고, 손을 씻다 반지를 잃어버리고,10분 주기로 같은 말을 반복합니다.정말 힘든 건 자신은 멀쩡하다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건강한 당신을 왜 병원에 가두어 두냐고.몇 분간 언쟁이 오가고 몇 분간 침묵이 흐릅니다.병원을 나와 부산역으로 가는 전철안에서 저는 웁니다.사람들이 이상하게 쳐다보지요.효도라는 건 어울리지 않는 내가 엄마에 대해 고민을 한 것이 병원생활을 하고부터 입니다.용돈을 드리고 맛난 걸 사드리고 짧은 여행을 같이 해도 엄마는 힘들어 하셨습니다.그래서 시작한 것이 ‘엄마의 기억’을 더듬는 대화였습니다.거창하게 카메라를 들이대고,조명을 설치해서 인터뷰를 하는 게 아니라,침대구석에 앉아 족발 먹으며 둘이서 옛날이야기를 하는 것이었습니다.어디가 가장 가고 싶었는지,무엇을 가장 보고 싶었는지,누가 가장 보고 싶은지
엄마가 몇 번이나 말한 후로리다는 아마 미국의 플로리다였을겁니다.달력에서 보았던 그 바닷가 사진이 팜비치인지 마이애미비치인지는 모르겠지만,저는 지난 3년 간 엄마가 말한 곳을 찾아다녔습니다.미국,중국,일본,멕시코,핀란드..길에서 먹고 자고 기나긴 여정이었지만, 여태 느끼지 못했던 즐거운 촬영이었습니다.이 사진들은 전시가 끝나면 엄마의 병실에 걸 예정입니다. 창문 없는 병실에 엄마의 창을 만들 겁니다.효도 없는 내 인생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보험설계사를 하시며 나를 응원했던 사진의 길입니다.
박진영(Area Park)
부산출생. 대학과 대학원에서 저널리즘 사진과 다큐멘터리 사진을 공부했다.
파노라마 카메라와 대형카메라로 도시풍경과 사건현장을 누비며 20-30대를 보냈다. 형식과 내용에 있어 새로운 다큐멘터리 사진의 시도와 모색을 하며 미술계의 주목을 받았고, 디지털이 도래한 시대에 사진의 원점 혹은 사진 본연의 의미가 이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한 지에 대한 질문과 대안을 찾고 있다. 현재는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몇 가지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국립현대미술관 <우리가 알던 도시-강홍구, 박진영2인전>, 에르메스 아뜰리에 <사진의 길-미야기현에서 앨범을 줍다>, 고은사진미술관 <방랑기1989-2013>, 금호미술관 <The Game> 등에서 개인전을 개최했다. 2008 광주비엔날레 <연례보고>, 대구사진비엔날레, 국립현대미술관<한국사진 60년>, 서울시립미술관 <한국 현대사진의 풍경>, 경기도미술관 <미술에 꼬리 달기>, 로댕갤러리 (사춘기 징후), 아르코미술관 (트랜스 팝) 등의 전시와 미국 휴스턴뮤지엄, 산타바바라뮤지엄 <Chaotic Harmony>, 독일 레인반하우스 사진박물관 <Fast Forward: Photographic message from Korea>등 국내외에서 100여 회의 기획전에 참여했다. 그의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경기도미술관, 서울대학교미술관,고은사진미술관, Smith College Museum, UBS컬렉션, Art Link, 서울올림픽미술관, 동강사진박물관 등에 소장되어 있다.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작업하고 있다.
[Education]
중앙대학교 대학원 사진학과 중퇴
경일대학교 사진영상학과 졸업
[Solo Exhibition]
2015 ‘우리가 알던 도시_강홍구 박진영 2인전’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2013 ‘방랑기 1989-2013’ 고은사진미술관, 부산
2012 ‘사진의 길 -미야기현에서 앨범을 줍다-’ 에르메스 아틀리에, 서울
2011 ‘ひだまり’ 토요타 아트스페이스, 부산
2008 ‘ひだまり’ 갤러리 S, 서울
2006 'The Game -분단풍경 다시보기-' 금호미술관, 서울
2005 ‘Boys in the City’ 금호미술관, 서울
2004 ‘서울…간격의 사회’ 조흥갤러리, 서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