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Eun Museum of Photography’s annual project has exhibited various sides of Busan, captured by the leading Korean photographers for the last 7 years. Now it welcomes a new title, Busan Project, with a wider and more flexible meaning. The Project is an attempt to observe Busan from a new point of view and it presents its first outcome, INDUSTRY BUSAN by ChoonMan Jo. Jo is a great artist known for photographing those major industrial facilities in Korea including the shipyards and other massive manufactural structures. What did he see in Busan’s industrial facilities, in Busan Project 2019?
The city we live in is in its entirety a massive machine and a factory. The cellphone we constantly carry with us is another piece of machine and although we may not often think of them in this way, the houses we live in including the apartments are a type of housing machine as described by Le Corbusier. When the power supplied to those machines are stopped or their parts are broken, our entire lives may shatter. Perhaps the world that we live in is an organism, information and capital smoothly flowing through it, aiming to be a large, singular machine and factory.
Busan’s manufacturing industry is quite diverse and includes rubber, shoes, steel, shipbuilding, chemical, automobile, and ready-to-wear to name just a few. Its history goes back a long way but the manufacturing industry was never captured in the form of photographic images. ChoonMan Jo turned the lens to this side of Busan. The Camera too is a machine for capturing images, meaning a machine is photographing another machine, and maybe Jo too is a photographic machine of the sort. Jo is probably the first to take note and capture Busan’s industrial facilities in such a manner.
조춘만, 인더스트리 부산의 안과 밖
지난 7년 동안 한국의 대표적 중견 사진작가들이 부산의 다양한 면모를 담아 전시해온 고은사진미술관 연례기획의 명칭이 바뀌었다. 새 이름은 보다 의미의 폭이 넓고 유연한 〈부산 프로젝트〉이다. 〈부산 프로젝트〉는 부산의 여러 면모를 다시 새로운 시선으로 보려는 시도이며, 그 첫 결과물이 조춘만의 〈인더스트리 부산〉이다. 조춘만은 그 동안 우리나라의 중요한 공업 시설, 조선소를 비롯한 거대한 산업 구조물들을 촬영해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작가이다. 그가 바라본 부산의 산업시설들, 〈부산 프로젝트 2019〉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일까?
우리가 사는 도시 전체는 일종의 거대한 기계이자 공장이다. 늘 지니고 다니는 휴대전화도 기계이고, 평소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아파트를 비롯한 집 조차도 르 코르뷔지에 말처럼 일종의 거주를 위한 기계이다. 그 기계에 공급되는 동력이 멈추거나 무엇인가 고장 나면 우리의 삶 전체가 흔들리기도 한다. 어쩌면 우리가 사는 세계 자체가 정보와 자본이 잘 흘러 다니는하나의 유기체로서 조직된 거대한 단일화 된 기계이자 공장을 지향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부산의 제조업은 고무, 신발, 철강, 조선, 화학, 자동차, 의류 등 다양하다. 역사 또한 깊지만 제조업 생산지를 사진으로 이미지화 한 경우는 거의 없다. 있더라도 개별적인 회사들의 필요에 따른 것이거나 공공 기관에서 요구되는 것이었다. 조춘만은 그 부산에 사진기를 들이댄다. 사진기 역시 이미지 포착 기계이니, 기계가 기계를 찍는 셈이고 조춘만 역시 사진 기계의 일종이 아닌지 모를 일이다. 이처럼 부산의 산업시설을 집중적으로 찍은 것은 아마도 조춘만이 처음일 것이다.
조춘만의 카메라에 담긴 부산의 산업시설은 일부는 공장 전체의 풍경이고 다른 하나는 제품이나 제품을 생산하는 도구 또는 물류시설들이다. 거대한 크레인, 롤러에 감긴 고무 벨트, 해독하기 어려운 언어처럼 얽혀 있는 크고 작은 파이프, 큐브처럼 쌓인 컨테이너, 무엇이 담겨 있는지 모르는 화려한 색감의 드럼통, 이빨을 차갑게 드러낸 금속 치차들, 단정하게 줄지어선 선박들과 조정장치, 시뻘겋게 달아오른 철봉과 거대한 단조 프레스 등등이 그가 찍은 대상들이다.
부산이라는 거대 기계는 무엇인가를 생산하는 공장과 그 결과물인 상품과 그걸 운송하는 물류 시스템들로 되어있다. 그리고 그 시스템이 하나의 생태계를 이루는데, 조춘만은 지금까지 대개 공장의 외부를 제법 먼 거리에서 찍었다. 그 이유는 물론 거대 중공업 시설들을 대상으로 했고, 이것들은 거리가 적절히 떨어져야만 전체 모습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리고 밤에 찍은 사진들이 많은 이유도 다른 것들이 모두 어둠에 잠긴 시간에야 비로소 눈부신 공장의 불빛이 대상의 존재를 잘 드러내어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번 전시의 가장 큰 특징은 조춘만이 공장의 내부로 들어갔다는 것이다. 그의 시선의 위치와 대상과 거리가 바뀐 것이다. 용접공 출신으로 공장의 내부에 익숙한 조춘만은 다양한 현장의 모습에 압도당하기도 하고, 공장의 디테일에 사로잡히기도 하면서 다른 도시와는 구분되는 부산의 산업적 특징을 포착한다. 그가 찍은 공장 내부는 작은 규모의 공장부터 대규모 공장까지 포함된다. 그래서 전시는 크게 산업 외부와 산업 내부, 디테일, 그리고 항구와 선박이라는 4개의 카테고리로 분류되어 부산 산업의 안과 밖을 모두 조명한다.
조춘만의 카메라가 공장 내부로 들어가면서 두 가지가 우선 달라진다. 하나는 대상과의 거리가 가까워지면서 공장의 디테일들이 등장한다는 것이다. 볼트, 쇳밥 등의 작은 것들부터 거대한 철물의 단조 장면과 고무 제품 제조 시설까지 모두 다 들어온다. 또 하나는 제품을 생산하는 소규모 공장들 속에 노동자의 모습이 눈에 띈다는 것이다. 이는 물론 작은 규모의 공장도 대상에 넣다 보니 일어난 일이다. 조춘만이 촬영한 공장을 채운 사물들의 용도, 목적, 작동방식은 모르지만, 우선 일종의 인위적 장엄함이 느껴진다. 이 느낌은 머리로 온다기보다는 몸으로 온다. 이는 사진이라는 이미지의 힘이자 대상 자체가 가지는 힘이다.
조춘만이 찍은 공장들은 서로 다르지만 물질들을 특정한 목적에 맞춰 새롭게 변형, 제조한다는 점은 같다. 4차 산업혁명이 오고 5G 시대가 왔다고 해도 공업이라고 불리는 2차 산업은 여전히 중요하다. 아무리 정보의 생산, 소비가 산업의 주류가 되더라도 인간은 신체적 조건 때문에 물건들을 필요로 하고 그것을 생산하는 일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조춘만의 사진은 일종의 유형학적 특성을 가지고 있지만, 결코 거기에 국한 되지않는다. 그의 호기심은 현재 왕성히 활동중인 공장들부터 운영이 멈춘 오래된 공장들에 이른다. 그는 압도적인 산업의 경관을 통해 인간과 함께 살아 숨쉬는 기계와 공장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인간이 운영하는 공장뿐 아니라, 어떤 무엇이라도 언젠가는 무너지고, 사라지고 그 위에 풀과 나무가 자란다는 것을 독일의 폐공장인 푈클링엔 제철소 사진으로 드러냈다. 이는 일종의 공장의 미래에 대한 예언이며 현실이자, 그의 사진이 갖는 묵시록적 스펙트럼이 얼마나 폭 넓은지 알 수 있게 해주는 장치이다. 이번 전시 도록에서 이전 작업을 부록으로 넣은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이 전시 도록을 통해 우리는 조춘만 사진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가늠해볼 수 있다.
조춘만의 사진은 공장에 대한 예찬도 단순한 감탄도 아니다. 어느 지점에서는 냉정한 기록이면서 한편으로는 우리가 사는 삶의 기저에 있는 미지의 거대 괴물에 대한 응시이기도 하다. 사실 우리는 공장에서 생산한 엄청나게 많은 물건들을 소비하고, 버리면서도 그것의 근원에 관해 생각하지 않는다. 심지어는 외면하기조차 한다. 공장들은 세계 이곳 저곳을 이윤을 찾아 떠돌고 옮겨 다니고, 그 결과 도시 하나가 망가지는 일이 순식간에 벌어진다. 왜냐하면 공장이란 단순한 기계의 집합이 아니라 자본과, 인력과, 기술 등등 인간이 만들었다고 자랑하는 모든 것이 결합된 구조물이기 때문이다. 이 구조물은 사실 아무리 거대해도 생산성과 자본의 이익에 의해 언제든지 무너질 수 있는 허약한 토대를 갖고 있다. 어쩌면 조춘만의 사진에서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공장과 기계의 강력한 이미지가 그것을 생산하고 건설한 인간이 구축한 근본적 토대인 자본과 금융이라는 모래 위에 서 있다는 깨달음일 수도 있다.
조춘만의 사진은 사물들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과 그것들에 질서를 부여하고 통제하는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를 동시에 묻는다. 공업적 지식은 전문 영역에 들어간지 오래고 그 생산품의 비밀을 우리는 거의 알지 못한다. 즉 비밀을 보면서도 읽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조춘만의 사진은 읽지 못하는 비밀의 간략한 해설서가 아니라 오래 두고 읽어 볼 수 있는 시각적 증거로서 지속적으로 작동할 것이다.
부산은 한국의 격동기를 온몸으로 겪어낸 도시이다. 그리고 가장 먼저 사진을 받아들인 곳이자 세계로 열려있는 관문으로서 여러 문화가 어우러진 다채롭고 활기찬 도시이다. 고은사진미술관의 연례 기획 〈부산 프로젝트〉를 통해 한국 중견사진가들이 찾아낸 다양한 부산의 모습은 단순한 기록을 넘어 한국 사진계의 성과로 남을 것이며, 또한 부산 지역의 역사, 문화적 스펙트럼을 확장하는 데 기여하게 될 것이다. 고은사진미술관
INDUSTRY BUSAN
GoEun Museum of Photography’s annual project has exhibited various sides of Busan, captured by the leading Korean photographers for the last 7 years. Now it welcomes a new title, Busan Project, with a wider and more flexible meaning. The Project is an attempt to observe Busan from a new point of view and it presents its first outcome, INDUSTRY BUSAN by ChoonMan Jo. Jo is a great artist known for photographing those major industrial facilities in Korea including the shipyards and other massive manufactural structures. What did he see in Busan’s industrial facilities, in Busan Project 2019?
The city we live in is in its entirety a massive machine and a factory. The cellphone we constantly carry with us is another piece of machine and although we may not often think of them in this way, the houses we live in including the apartments are a type of housing machine as described by Le Corbusier. When the power supplied to those machines are stopped or their parts are broken, our entire lives may shatter. Perhaps the world that we live in is an organism, information and capital smoothly flowing through it, aiming to be a large, singular machine and factory.
Busan’s manufacturing industry is quite diverse and includes rubber, shoes, steel, shipbuilding, chemical, automobile, and ready-to-wear to name just a few. Its history goes back a long way but the manufacturing industry was never captured in the form of photographic images. ChoonMan Jo turned the lens to this side of Busan. The Camera too is a machine for capturing images, meaning a machine is photographing another machine, and maybe Jo too is a photographic machine of the sort. Jo is probably the first to take note and capture Busan’s industrial facilities in such a manner.
Busan’s manufacturing facilities photographed by Jo show full scenery of the factories while other images show products or tools and logistic facilities where the products are made. He photographed big cranes, rubber belts wrapped around the rollers, big and small pipes entangled like an undecipherable language, containers stacked in cubes, colorful barrels containing who knows what, metal gears exposing their cold teeth, vessels and control devices lined up neatly, iron rods glowing red and massive forge presses.
The giant machine called Busan is composed of factories that produce things, the products which are the outcome, and the logistics system that transport them. These systems then form an ecosystem and until now Jo had mostly photographed the factory exteriors from a far distance. It was of course because his subjects were massive heavy industry facilities and the full features can be appreciated only from far. Also, there are many nocturnal images because only when everything is submerged in darkness, lights from the factories would well reveal the presence of those objects.
The most notable part about this exhibition is that ChoonMan Jo has stepped into the factories. His point of view, his subjects and the distance from them have all changed. Having worked as a welder himself, Jo is familiar with the insides of a factory yet he was at times awed by different looks from the scene, and fascinated by the details of the factories as he captured the industrial features of Busan that are different from any other city. He photographed the interiors of the factories, their size varying from small to massive. As a result, the exhibition is divided into 4 categories to highlight the ins and outs of Busan’s industries: inside and outside of the industry, the details, and the ports and the vessels.
When Jo’s camera stepped inside the factories, two things have changed. First, as the distance from the subject became closer the details of the factories began to be apparent. They show everything, from the small elements like bolts and iron dust to the scenes of forging massive ironware and rubber production facilities. The other is how the laborers started to stand out from the small factories producing goods. This is of course because he started to include small scaled factories as his subject. Although the use, purpose, or mechanism of the things filled in the factories Jo has photographed are unknown, a kind of artificial grandeur can be sensed. The feeling penetrates through the body rather than the mind. This is the power of image and photography, and the power held by the subject.
Although the factories Jo has photographed are all different from one another, they are equal in the sense that they newly transform and produce materials for a certain purpose. Even with the arrival of the fourth industrial revolution and 5G era, secondary industry or the manufacturing industry still matters. Even if production and consumption of information have become an industrial mainstream, due to our physical conditions humans will need things and they will continue to be produced.
ChoonMan Jo’s photographs show a certain typological trait but they do not stop there. His curiosity reaches out to factories that are still very active, as well as those that have stopped operation long ago. Through the overwhelming sceneries of the industry, he presents machines and factories living and breathing with humans. From the images of closed steel mill in Völklingen, Germany, he exposes that everything, and not only the factories run by humans, will collapse and disappear someday and grass and tree will cover them. This is a prophecy and reality of the factory’s future, and a device showing how broad the apocalyptic spectrum of his photographs are. His previous works are included in this exhibition book precisely for this reason. In this publication we can access the past, present and the future of ChoonMan Jo’s photography.
Jo’s images are not a praise for the factories nor are they mere admiration. They are unemotional documentations in some ways and on the other hand, are a gaze towards the unknown giant monster living in the foundation of the life we are living. In fact, we consume a great many products produced from the factories and dispose them without thinking about their origin. We sometimes even look the other way. Factories move here and there around the world seeking profits and as a result, a city is destroyed in a blink of an eye. This is because a factory is not just a cluster of machines but a structure fused with capital, manpower, technology, and everything humans boast of creating. No matter how big this structure is, in truth its base is weak which can be collapsed by productivity and capital profit. Perhaps what we can see from Jo’s photographs is a revelation that the strong images of factories and machines stand on sand dunes―capital and finance, which are the fundamental foundation established by humans who produced and constructed them.
Jo’s images question the objects and at the same time the humans who control and have put them in order. Industrial knowledge has long become part of the professional territory and we barely understand the secrets of those products. We see the secret but we cannot decipher them. In that sense, ChoonMan Jo’s photographs are not a simple guidebook for a secret we can’t read, but visual evidence in constant movement which we can read through for a long time.
Busan is a city that has lived through the turmoil of Korean history. It is also the first location to accept photography and a gateway open to the world, a city full of energy and various cultures. Through Busan Project, an annual program by GoEun Museum of Photography, diverse faces of Busan are discovered by notable Korean photographers. They are more than documentation and will become an accomplishment of Korean photography scene, contributing to expanding the historical and cultural spectrum of the region, Busan.
GoEun Museum of Photography
인더스트리 부산
산골 마을 어린아이 눈에 비춰진 기계는 신기함으로 가득한 호기심의 대상이었다. 18살 울산 현대중공업에 취직할 때까지 줄곧 산골 마을에서 살았다. 90호 되는 마을에 리어카는커녕 자전거도 한 대 없었고, 바퀴 달린 물건이란 장날 10리길 읍내까지 쌀과 보리 등 농산물을 운반해 주는 개인이 운영하는 소달구지 3대가 유일했다. 생존을 위한 도구는 낫과 괭이, 삽과 쟁기 등 농사짓는 연장과, 모든 물건들의 운반 수단인 지게가 전부였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처음 버스를 타 보았고, 읍내 장터에 가본 세상은 신세계였다. 특히 철공소 앞에서 멈춘 발걸음은 떨어지지 않았다. 철공소 일꾼들이 숯불에 벌겋게 달궈진 쇠를 망치로 두들겨 낫과 호미 등 연장 만드는 단조 솜씨가 나의 눈에 신기원으로 비춰졌다. 초등학교 3학년 담임이신 조만률 선생님 글짓기 시간에 장래 희망을 막연하게 공장 기술자가 되겠다고 적었다. 산골 소년 고달픈 삶의 시간들이 기계에 대한 무한 애정과 예찬론을 가지게 만든 것인지 정확히 알 수 없을지라도, 현대중공업과 산업현장에서 배관용접공으로서 수없이 흘린 굵은 땀방울의 시간들이 나를 기계사진가의 길로 강하게 끌어주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세계 제 2위 환적항, 항구도시 〈인더스트리 부산〉 사진 작업은 2013년도부터 시작되었다. 부산 신항에서 중국 청도항, 상하이 양산항, 얀탄항을 거쳐 싱가폴 항구까지, 일반 여객선이 아닌 2009년 현대중공업에서 건조한 프랑스 ‘CMA CGM’ 회사 소속 130,000톤 아퀼라호 컨테이너선을 타고 가는 여정이 부산사진촬영 첫 출발점이었다. 사실 부산은 항구를 제외하면 존재 자체가 의미가 없을 만큼 항구가 부산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항구만 촬영해도 부산을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은 착각은 본 작업이 시작된 2018년 2월 여지없이 허물어졌다. 항구를 제외한 거의 모든 기계 산업시설들이 최고 보안을 요구하는 군사시설처럼 공장건물 안에 꼭꼭 숨어 있었다.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은 판넬 지붕과, 벽으로 둘러싸인 공장 건물과,경비원 시각보다 더 무서운 전자 감응 장비 CCTV가 전부였다.
기계 산업은 닫힌 구조다. 외부 시선을 철저히 차단한다. 듣기만 해도 공포가 느껴지는 보안실, 어떤 이유인지 언제부턴가 회사 경비실도 보안실로 바뀌고 있다. 어느 한 곳도 자신의 공장 내부시설을 보여주고 싶어 하지 않았다. 생산된 제품과 달리회사 입장에서는 공장내부 노출로 인한 이득이 전혀 없이 손해 보는 일만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고, 생산 시스템 외부 외부노출은 회사 생존과 직결되는 점을 가장 많이 염려했다. 하지만 부산을 표현하기 위해 꼭꼭 닫힌 공장 안을 들여다 볼 수밖에 없었다. 촬영을 원하는 공장을 선정하고 다방면으로 공장 섭외에 들어갔다. 상공회의소를 통하기도 하고 지인을 통한 공장섭외에 나섰지만 촬영을 허락하는 공장은 세 손가락에 꼽을 정도였다. 여기서 포기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었기에 촬영허가서공문을 만들어 맨투맨으로 직접 공장을 찾아 나섰다. 하지만 공장 내부는 고사하고 정문 통과조차 어려웠다. 거절의 연속이었으나 수 없는 설득 끝에 운명처럼 촬영을 허락하는 공장이 하나, 둘 이어졌다.
이번 부산 촬영은 기존 〈인더스트리 코리아〉에서 한발 더 접근했다. 개별적 기계와의 직접적인 소통을 위해서다. 부산 이전의 사진 작업은 중공업의 작업이자 철저히 외향적인 작업이었으나, 부산 사진은 공장 안 기계와 제품생산이 주류를 이룬다. 〈인더스트리 코리아〉가 중공업기계 생성과 생존을 다루는 내용이라면, 부산 사진은 개별적인 기계와 그 기계들이 운용되는 모습들을 다루었다고 할 수 있다. 세상 밖으로 나온 완제품이 아닌, 지붕으로 덮인 공장 안에서 생동하는 개별적 기계들과 그 기계들이 생산하는 초기단계 제품들을 시간성이 가미된 영상작업을 포함한 사진작업으로 보여준다.
주식회사 태웅 단조공장 밤 10시, 이곳은 난생 처음 보는 무시무시한 외계인 세상 같았다. 조선소, 발전소, 제철소, 석유화학, 정유공장 등 중공업 산업현장에서 배관용접공으로 공장건설에 참여하기도 했지만 이런 낯선 형태의 공장은 처음 보았다. 엄청나게 높은 천정과 어두컴컴한 조명, 거대한 시설들이 낯설어 마치 SF공상과학 영화 세트장에 와있는 것 같은 기분이 느껴졌다. 쇳덩이를 단조하기 위해 가열하는 10여개의 가마와 프레스 기계가 이국적인 풍경으로 다가왔다. 5,000톤, 8,000톤, 15,000톤 프레스 기계가 벌겋게 달아오른 수십 톤 무게 쇳덩이로 풍력발전 추진축을 단조하고 있는 모습이 실로 대단했다. 공룡 같은 거대한 프레스 기계가 추진축을 단조할 때마다 콘크리트 바닥 진동으로 삼각대에 고정시킨 카메라가 흔들려 촬영이 어려울 정도였다. 딱정벌레 같은 지게차가 불가마 속의 쇳덩이를 집게로 집어 들어 프레스로 옮겨주면 프레스 기계는 수십 톤 무게 쇳덩이를 어린아이가 손으로 찰흙을 가지고 놀듯이 움직여 가볍게 단조하는 모습이 신기하게 느껴졌다.
부산에는 다양한 종류의 크고 작은 공장들이 수없이 많았다. 철강, 고무, 조선, 화학, 자동차, 신발 등과 각종 제조업 공장들이 즐비했다. 즉 매장에 진열되어 있는 신발 한 켤레를 만들기까지의 모든 과정의 공장들이 부산에 존재했다. 신발의 형태를 만들기 위해 나무를 깎아 신발 바닥 형태와 똑같은 거푸집을 만들고, 주물공장에서 쇠를 녹여 끓는 쇳물을 거푸집에 부으면 거친 형태의 기계 모양이 만들어진다. 선반과정으로 옮겨 정교하게 쇠를 깎고 다듬고 드릴 기계로 볼트 구멍을 뚫어 또 다른 형태의 기계 부속품과 조립하면 하나의 기계 완성품이 생산된다. 완성된 개별적 기계를 이용해 고무원료 신발 밑창을 금형으로 찍어 만들고, 가죽을 재단하고, 천과 가죽은 재봉틀로 봉제된다. 이렇듯 한 켤레 신발이 만들어지는 과정들이 모두 분업 형태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매장에 화려하게 진열되어 있는 다양한 제품들 모두 여러 단계 제작과정을 거친 완제품들이다. 제작과정에 관심 있는 사람일지라도 제품 제작과정은 직접 볼 수 없다. 철저히 제작과정의 시선들을 차단한다. 시장에서 소비되는 제품 즉,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완성된 제품만 볼 수 있는 것이다.
기계는 자연 현상계와 달리 자신과 전혀 다른 제품을 생산해 낸다. 기계는 전혀 다른 기계 부품 수십에서 수만개의 개별집합이다. 기계는 자기와 같은 DNA를 가진 제품을 생산하는 법이 없다. 프레스 기계가 프레스 기계를 만들지 않고, 벤딩 기계가 벤딩 기계를 만들지 않는다. 뼈대가 구성되고 모터가 설치되며, 정교하고 치밀하고 정확한 기계 부품들의 유기적 집합으로 구성된 구조물에 신경망을 연상하는 전선과 통신케이블이 연결되고, 혈관 같은 배관에 연료가 흐르면, 기계는 본연의 생명을 부여 받는다. 기계는 생존하기 위해 우렁차게 소리 내며 숨을 쉬고 진동하며 열을 발산한다. 이것이 기계이고 그들이 살아가는 방식이며, 내가 한없이 기계 매력에 깊숙이 빠져드는 이유다. 이제 우리는 기계와 분리해서는 삶을 이야기할 수 없을 만큼 인간 세상에 기계가 깊숙이 들어와 버렸다. 기계 없는 삶이란 생각도 할 수 없는, 하루 종일 기계와 공존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바다를 배경으로 성장해온 부산은 도시성장과 함께 형성된 공장들로 인해 공장과 주거지역이 혼재해 있는 곳도 많았다. 선반과 밀링, 대형드릴 등을 가지고 혼자서 운영하는 공장으로부터 수백, 수천 명이 근무하는 공장들이 뒤섞여 있었다. 이처럼 항구와 자동차, 크고 작은 수많은 업종의 중소기업들이 부산경제를 이끌어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관문으로서 지리적 요충지이며 세계 제2위 환적항인 인더스트리 부산은 풍부한 인적자원을 바탕으로 다양하게 끝없이 진보해 나갈 것으로 여겨진다. 인간이 존재하는 한, 기계 산업 행위는 멈추지 않을 것이며, 새로운 제품생산을 위해 또 다른 형태의 기계들이 탄생할 것이다. 지금까지 그랬듯 늘 그들을 지켜보고 싶다.
기계, 자신의 존재를 알리며 포효하는 기계는 살아 있다.
2019. 3. 31
조춘만
조춘만의 카메라가 보여주는 부산 산업의 생태계
고은사진미술관이 1년간 부산을 기록하는 [부산 프로젝트]의 작가로 조춘만을 선정했을 때 그는 평소 산업현장 사진가답게 부산의 산업을 찍기로 했다. 그런데 울산에 살며 울산의 중공업 광경을 사진 찍어온 조춘만이 부산의 산업과 항만 등에 접근했을 때 그는 몇 가지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그가 오랜 세월 자라며 사진을 찍어온 울산과 달리 부산은 그의 홈그라운드가 아니었다. 울산과 부산은 산업이 성장한 역사도, 지리적 조건도, 산업구조도, 경관도 달랐다. 한 마디로 울산과 부산은 모든 면에서 달랐다. 울산은 중화학공업의 도시, 부산은 경공업과 관광업의 도시였다. 사진으로 찍을 수 있는 대상 자체가 달랐다. 그리고 사진의 시선도 달라져야 했다. 그래서 울산에 익은 눈으로 부산을 기록한다는 것은 조춘만에게는 챌린지이기도 했다. 조춘만이 그 챌린지를 어떻게 다루면서 시선의 변화를 이루었는지, 그 결과 부산은 그의 사진에서 어떤 모습으로 나타났는지 살펴보는 것은 단순히 사진가가 대상을 어떻게 찍었는가 하는 문제가 아니라 사진 찍는 지역이 변하면서 대상의 특성도 변하고 따라서 그의 시선도 변하는 복합적인 과정이다. 그것은 마치 사진가와 대상, 이미지가 하나의 기계처럼 결합하여 새로운 조합을 만들어내는 것과 같다. 이 경우 사진은 현실의 반영도 아니고 충실한 기록에 머무는 것도 아니다. 사진은 조춘만― 울산―중공업―부산―경공업으로 이어지는 기계복합체의 한 부속으로서 기능한다. 결국 이 글은 사진이라는 기계가 울산에서 부산으로 무대를 바꾸면서 어떻게 다른 기계들과 결합하여 다른 작동방식을 취하는지 살펴보는 기회가 될 것이다.
울산의 조춘만
조춘만은 달성에서 태어났지만 성장은 울산에서 했다. 1970년대부터 중화학 육성지역으로 지정된 울산의 성장과 조춘만의성장은 평행한 궤적을 그리며 같이 진행해온 역사다. 그는 어릴 적부터 울산의 중공업 공장에서 일하면서 잔뼈가 굵었고 성인이 돼서는 그 공장의 육중한 기계미에 매료되어 사진을 찍게 됐다. 노동인권의 개념도 없던 1970년대 말 중공업의 현장에서 그는 이루 말로 할 수 없는 고생을 많이 했을 텐데도 나중에 그 현장의 기계들이 미적인 것으로 다가와 사진 찍게 됐다는 것은 불가사의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아마도 그의 혈관에는 중공업의 피가 흐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가 사진 찍는 모습을 옆에서 보면 대상을 관조하고 분석하는 시선이 아니라 대상이 너무나 맛있어서 집어삼키지 않으면 참을 수 없는 표정이다. 그는 나방이 불에 뛰어들 듯 광경에 뛰어든다. 그에게 사진은 산업의 기록도 아니고 역사도 아니다. 사진은 한 인간이 세포의 단위에서부터 강철과 콘크리트의 분자들과 삼투하고 동화되는 신기한 작용의 과정일 뿐이다. 그래서 그의 사진의 내용과 형식도 철저히 울산의 산업적 특성에 맞춰서 발전하여 오늘날에 이르게 됐다. 물론 그의 활동범위가 울산에만 한정된 것은 아니고 여수, 광양 등 중공업의 현장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가서 사진을 찍지만 울산의 중공업 풍경에 맞춰 형성된 그의 시선은 다른 지역에서도 울산다운 광경을 찾는다. 그것은 모든 것을 압도하는 초현실적인 스케일과 설비들의 어지러운 디테일이 정글처럼 얽혀 있는 중공업과 화학공업이 만들어 내는 광경이다. 결국 조춘만의 울산은 한 군데가 아니다. 그는 심지어 외국에서도 울산을 찾는다. 지난 해 독일 푈클링엔 제철소에서도 그는 울산다운 광경을 찾았다. 푈클링엔 제철소는 지금은 문을 닫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다른 의미를 갖는 장소가 됐지만 그의 시선은 대지를 우뚝 딛고 서서 큰 스케일의 공업생산력을 발휘하는 현장에 꽂혀 있다.울산 시내를 다녀보면 산업의 스케일이 다른 지역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금새 알 수 있다. 조선소의 선박 블록들은 웬만한 건물보다 훨씬 높고 크다. 중화학 공장들의 설비와 굴뚝들을 멀리서 보면 하나의 숲을 이루고 있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빽빽하다. 울산은 한 마디로 건축적인 높이에서부터 옆으로 펼쳐진 수평선에 이르기까지 모든 차원에 걸쳐서 중화학 공업이 지배하고 있는 곳이다. 그래서 조춘만의 사진도 그런 공간감에 철저히 맞춰져 있다. 그의 사진을 여러 사진들의 분류 속에 위치시킨다면 건축사진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조선소의 선박 블록들은 엄청난 건축물들이며 (배를 만든다고 하지 않고 짓는다고 하고 영어로도 ship building이라고 하는 것은 배가 하나의 건축물임을 의미한다). 중화학 공장들도 다들 엄청난 건축물들이다. 그래서 그는 초점 거리가 긴 렌즈를 써서 형태의 왜곡이 없도록, 건축물의 수직선은 절대로 기울지 않도록 철저히 객관적으로, 측정하듯이 사진 찍는다. 그런 결과로 나온 사진들은 중공업이 대지를 딛고 우뚝 선 엄청난 존재감이다. 그리고 복잡한 설비들은 카메라에서부터 멀리 있고 초점 거리가 긴 렌즈로 찍었기 때문에 원근감이 대폭 압축되어 완전히 한 덩어리로 뒤엉켜 보인다. 그 결과로 울산의 산업경관은 도대체 뭐가 뭔지 알 수 없는 정글, 혹은 ‘앙코르와트 같이’ (이영준 “조춘만의 산업사진이 미래에 필요하게 될 이유” 『조춘만의 중공업』 워크룸프레스, 2014) 보인다. 그 사진들은 울산의 산업에 대한 기록이기도 하지만 누구도 그 속속들이 들어찬 다양한 산업시설물들의 종류와 원리들, 기능들을 알 수 없는 수수께끼의 숲으로 다가온다. 조춘만의 사진에서는 울산의 공장들은 지리산에 수도 없이 빽빽하게 자란 나무들처럼 밀도 높은 산업생태계를 이루고 있다. 지리산에 가면 굳이 모든 나무의 종류를 알지 못해도 숲이라는 전체가 하나의 독특한 세계로 다가오듯이, 울산은 조춘만의 사진 속에서 독특한 세계로 다가온다. 아니, 멀어진다.
부산의 조춘만
그런 조춘만이 부산에 왔다. 사실 부산은 울산 같이 중화학공업이 발달한 도시는 아니다. 세월의 변화에 따라 부산 산업의구조도 많이 바뀌어 요즘은 영화가 부산의 주된 산업이 아닌가 싶을 때도 있다. 부산국제영화제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영화제이며, 부산에서는 작년 한 해에 400편의 영화가 만들어질 정도로 부산은 영화의 메카가 됐다. 1970년대부터 중화학 육성지역으로 지정된 울산과는 달리, 부산은 경공업 중심의 도시가 됐고, 무엇보다도 항만도시로 성장해 왔다. 부산의 산업구조를 분석하는 논문이나 잡지기사마다 빠지지 않는 말은 “1970년대 정부의 중화학 공업 육성 정책에 따라 울산·창원·포항·구미 등은 급속하게 성장한 반면 부산은 경공업 위주의 생산구조 유지”하는 바람에 성장이 안 되고 있다는 것이다. (황영순, “IT융합, 부산 산업 재도약의 핵심” BDI 정책포커스, 2011.1, 1-12, 부산발전연구원(Busan Development Institute), 최종열, “산업구조 혁신과 동북아 경제허브 전략으로” 부산발전포럼, (172), 10-19) 부산 경제는 전체적으로 부산의 인구 규모에 비해 낮고 약하다는 것이 전반적인 평가이다. 그런 사정은 여러 가지 수치로 잘 나타난다. 2010년을 기준으로 보면 부산의 경제규모(GRDP)의 전국비중은 5.0%로서 인구의 전국비중(7.1%)에 미치지 못한다. 부산의 수출은 1973년에는 전국비중 29.2%로 국내최대였으나 계속 하락해 2010년에는 전국비중이 2.7%로 떨어졌다. 부산지역 제조업의 전국 생산비중은 1967년 20.3%로 최고를 기록한 이후 지속적으로 하락해 2009년에는 전국의 3.2% 수준으로 떨어졌다. 그런 와중에 부산의 주력 제조업은 생활소재형에서 가공조립형으로 전환됐고, 가죽·가방·신발 산업의 특화도가 2.71로 가장 높다. 전국 100대기업 중 부산에 있는 것은 르노삼성자동차가 유일할 정도로 부산의 산업적 토대는 취약하다. 부산에 울산 같은 중공업 공장이 없고 주로 신발, 섬유 등 경공업 중심이 되다 보니 조춘만의 카메라는 어디에 초점을 맞춰야 할지 적잖이 고민을 하게 됐다.울산과 부산의 산업풍경의 차이는 우선 인터넷 지도상에서 충격적으로 나타난다. 울산의 대부분의 공업지역은 지도상에서 흐리게 블러(blur) 처리되어 디테일을 볼 수 없다. 울산에는 울산미포국가산업단지, 울산석유화학단지, 온산국가산업단지 같이 국가의 산업을 책임지고 있는 광범위한 국가적 스케일의 산업단지와, 현대자동차와 현대중공업 같이 중요한 기업들의 공장이 있다. 이들 단지와 공장들은 모두 블러 처리돼 있어서 어떤 디테일도 볼 수가 없다. 그리고 그런 시선 금지의 지역들이 조춘만의 카메라가 항상 향하고 있는 곳들이다. 조춘만은 마치 이 세상이 아닌 것 같은 초현실적인 스케일감을 자랑하며 기이한 불빛을 뿜어내는 그 경관을 찍기 위해 중공업 공장이 보이는 곳은 어디든지 찾아 올라가서 사진을 찍고 만다. 그에 반해 부산의 지도에는 블러 처리된 곳이 거의 없다. 국가적 스케일의 산업단지나 공장이 거의 없다는 뜻이다. 국가보안시설이며 세계5위를 자랑하는 부산항 신항만도 블러 처리돼 있지 않다. 사상공단, 녹산지구 국가산업단지도 블러 처리돼 있지 않으며 신항만에 비하면 규모나 중요성에서 비교가 안 되는 감천항과 영도의 한진중공업 조선소만이 블러 처리돼 있을 뿐이다. 그것은 조춘만이 사진 찍을 만한 스펙터클이 없다는 뜻이다. 세계에서 제일 큰 컨테이너선과 시추선, LNG운반선, FPSO 등 세계 최고의 조선기술을 뽐내는 선박들이 줄줄이 건조되고 있는 울산의 현장들과 달리 부산의 항만에서는 세계적인 규모의 선박이나 해양구조물은 볼 수 없고 녹슨 피더선(연안을 다니는 작은 규모의 컨테이너선)이나 어선, 여객선 등 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사진도 자연스럽게 대규모의 스펙터클보다는 디테일에 초점을 맞출 수 밖에 없게 되고 공장의 외부 보다는 내부로 들어가게 됐다. 그 덕에 그는 울산에서는 할 수 없는 관찰을 하게 된다. 울산에서 사진 찍을 때는 워낙 거대한 현장들을 멀리서 찍었기 때문에 공장이 돌아가는 메커니즘은 찍을 수 없었다.
조춘만이 사진 찍은 산업체들을 살펴보면 그의 카메라의 초점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조선소의 경우 영도의 한진중공업은 촬영을 위한 접근이 불가능할 뿐더러 주위에 올라가서 조선소를 관찰할 수 있는 산이 없다. 영도의 봉래산이 있지만 시야가 트이는 곳이 없어서 사진을 찍을 수 없다. 그래서 그가 찍은 곳은 중소업체인 대선조선이다. 1945년 대선철공소로 시작한 이 조선소는 컨테이너 3000개 미만을 싣는 피더(feeder; 대양으로 나가지 않고 연안을 다니며 컨테이너를 옮겨주는 작은 배), 재화중량 82,000톤 미만의 벌크선 등을 생산하는 곳이다. 여기서 찍은 사진들의 의미는 울산에서 찍은 것과는 완전히 다르다. 울산의 조선소들이 최첨단의 글로벌 조선산업의 전진기지라면 대선조선은 갯비린내가 물씬 풍기는 부산이라는 도시의 애환이 담겨 있는 곳으로 보인다. 사진에 나오는 배들도 소규모라서 더 그렇다. 대선조선이 상징적으로 보여주듯이, 부산에서 울산 같은 광경을 찾을 수는 없는 것이다.
시점의 변화--산업풍경의 디테일
조춘만은 그 대신 부산에서 완전히 다른 것을 찾았다. 그것은 산업의 속모습이다. 그는 동일고무벨트, 동성화학, 태웅철강등 일반인에게 각인된 유명 대기업은 아니지만 해당 분야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며 독자적인 기술개발을 하고 있는 산업체의 공장 속을 찍었다. 그렇게 해서 나온 사진들은 울산에서 찍은 것과는 완전히 다른 접근을 보여준다. 실내에 있는 공장설비들도 땅을 디디고 서서 중량을 버텨야 한다는 점에서는 건축물의 특성을 가지고 있고, 알 수 없는 설비들이 얽혀 있다는 점에서는 거대 조선소의 해양구조물과 비슷하게 난해한 면이 있지만 부산의 공장에서 조춘만은 설비들의 작동을 찍었다는 점이 가장 큰 차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는 산업의 생태계에 바싹 다가갔다. 그는 부산의 다양한 공장들을 다니며 다양한업종, 다양한 기술의 현장을 관찰했다.아무래도 부산 하면 떠오르는 것은 신발산업이다. 신발산업의 성장의 배후에는 고무산업이 버티고 있다. 두 산업의 성장추이를 보면 신발과 고무산업이 부산의 대표산업이 된 이력이 보인다. 조춘만은 고무와 관련된 업체 두 곳을 방문하여 사진 찍게 되는데 하나는 동일고무벨트(DRB)이고 또 하나는 동성화학이다. 동일고무벨트는 한국에서 가장 큰 고무벨트 생산업체로서 자동차에서부터 발전소에 이르는 온갖 다양한 기계설비에 들어가는 고무벨트를 만들고 있다. 국수가락을 연상시키는 고무벨트들이 줄줄이 걸려 있는 장면에서부터(IK197941_금사동) 고무벨트가 큐어링 프레스(curing press)에서 열과 압력을 받으며 숙성되는 장면은(IK180363_금사동) 왕성하게 생산이 일어나고 있는 현장의 열과 소음, 냄새를 전달하는 듯하다.
동성화학은 신발산업이 발달한 부산답게 신발창용 폴리우레탄 수지, 합성피혁 원료(PU resin) 등을 개발하고 만드는 화학기업이다. 이 기업의 공장에서 조춘만이 찍은 것은 스펙터클이 아니다. 우선 이 공장에는 대규모의 스펙터클은 없다. 엄청난 길이를 자랑하며 시야를 뒤덮는 각종 파이프가 가득 찬 울산의 중화학 공장과는 생산품목도, 규모도 다르다. 부산 산업의 중요품목 중의 하나인 신발의 원료가 생산되는 곳이라는 점에서 동성화학은 부산이라는 도시의 특성을 잘 함축하고 있다. (IK186819_신평동)
조춘만의 사진에는 야적장에 목재가 쌓여 있는 모습도 있으나 부산은 예전 같이 합판생산이 활발하지는 않다. 합판공업은 1968~79년까지 부산의 수출주종산업이었으나 동명목재 등 합판공장들이 도산 또는 폐쇄되어 사양화되었다. 부산은 자동차 부품만 아니라 선박부품도 활발히 생산하고 있다. 대형 선박에 들어가는 엔진축이나 방향타를 지지해주는 러더 스탁(rudder stock)은 16미터가 넘는 길이에 무게도 최대 160톤까지 나가 강철재료를 대규모로 가공하면서도 고정밀도를 지킬 수 있는 공업력을 필요로 한다. 온갖 거대한 강철제품의 재료가 되는 강철 잉곳에서부터 다양한 샤프트를 생산하는 곳으로 태웅철강이 있다. 1981년에 설립된 이 회사는 부산을 대표하는 철강기업이며 세계 최대의 단조가공 기업이다. 단조(forging)란 강한 압력을 가진 프레스로 빨갛게 달아오른 철강소재를 누르고 두드려서 제품을 만드는 공법을 말한다. 조춘만의 사진에는 그런 능력들의 치열함, 강도, 열기가 잘 나타나 있다.
상호기계적 풍경
완전치는 않지만 조춘만의 작업은 사진으로 된 부산 산업의 목록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은 독일인의 다양한 얼굴들을 기록하겠다는 아우구스트 잔더의 사진과도 비슷한 목적을 지닌다. 이제껏 한국에서 한 도시의 산업 생태계를 망라하여 찍은 사진가는 없었다. 외국에도 거의 없는 것 같다. 사실 도시의 산업 생태계에 대한 정보는 그 도시의 상공회의소 홈페이지에 가면 온갖 통계자료로 자세히 볼 수 있다. 조춘만이 하고자 했던 것은 산업 생태계의 속을 들여다보는 것이었다. 제품들은 어떤 과정을 통해 생산되는가, 생산의 설비들은 어떤 것이 있는가, 그것들은 어떤 구조를 하고 있는가, 설비들과 원료의 질감은 어떤 것인가 등이 그의 관심사였다. 그러나 조춘만의 사진은 그런 종합적인 연결까지 다루고 있지는 않다. 그는 눈앞의 대상에 충실한 사람이다. 그래서 각각의 사진은 산업이라는 거대한 퍼즐의 조각들이라 할 수 있다. 그 조각들은 하나의 생물 표본이 한 종(種)을 대표하듯이 하나의 산업을 대표한다. 어떻게 하면 퍼즐들이 맞춰진 전체의 모습을 볼 수 있을까? 그것은 물리적으로는 불가능하고 하나의 개념적 장치를 필요로 한다. 조춘만의 사진에 등장하는 산업의 디테일은 이 장치를 링크로 하여 서로 연결된다.그 링크란 상호기계성의 개념이다. 필자가 인문학에서 말 하는 상호주체성(intersubjectivity)을 변형하여 만든 ‘상호기계성’이란 말은 기계가 단독으로 존재할 수 없고 반드시 다른 기계와 연결이나 접합의 관계 속에서만 존재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이영준 『기계산책자』 이음, 2012) 연결, 접합은 모든 기계의 공통된 속성이다. 의학이 발달하지 않던 시절 사람 몸은 마음대로 연결하거나 접합할 수 없었지만 지금은 그것이 자유롭게 가능하다. 사람 몸도 기계가 됐기 때문이다. 자동차는 도로 시스템의 일부이며 강철산업과 연결돼 있고 석유화학산업과 연결돼 있으며 인체공학과도 연결된다. 이런 식으로 따지면 산업이란 기계들이 상호기계성이라는 먹이사슬로 얽혀 있는 하나의 생태계라고 할 수 있다. 조춘만의 울산 사진에서는 그런 얽힘을 볼 수는 없었다. 공장들 하나하나가 큰 덩어리로 우뚝 서 있는 기념비 같아서 다른 기계들과 얽혀 있다는 생각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석유화학공장 같은 경우 한 장면 속에서 수 많은 파이프들이 얽혀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일반인의 시선에는 그 파이프들이 무엇 하는 것들이고 다른 파이프들과 무슨 원리로 얽혀 있는지 알 수 없기 때문에 그것들은 한 덩어리의 거대한 기념비 내지는 건축물로 보인다. 공장설비의 건축성을 강조하는 조춘만의 사진 스타일도 그런 것들의 기념비성을 강조하는 쪽으로 형성돼 있었다. 반면 부산의 공장 안에 있는 기계들은 기념비가 아니라 산업생태계라는 큰 회로의 일부이다. 조춘만은 그 산업의 숲에 사진가로는 첫발을 디디고 일부를 봤다. 앞으로 그가 봐야 할 산업의 숲은 훨씬 넓고 조밀하다.
부산에는 그런 숲들이 아주 많다. 그것들에는 각각의 산업단지의 이름이 붙어 있다. 신평·장림 일반산업단지, 부산과학 일반산업단지, 센텀시티일반산업단지, 정관 일반산업단지, 기룡 일반산업단지, 반룡 일반산업단지, 동남권 방사선 의·과학 일반산업단지, 강서해성 일반산업단지, 명서 일반산업단지 등 외지사람에게는 이름도 생소한 총 43개의 산업단지가 있다. 사진가는 나무도 봐야 하고 숲도 봐야 한다. 조춘만은 오늘도 부지런히 카메라 렌즈의 초점링을 돌리며 어느 쪽에 초점을 맞춰야 할지 궁리하고 있다. 몇 년이 더 지나면 부산 산업의 숲과 나무는 조춘만의 카메라 앞에 전모를 드러낼 것이다. 그러면 부산은 울산과는 다른 특성을 가진 산업의 숲으로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내게 될 것이다.
이영준 [기계비평]
조춘만
1956 경북 달성 출생
2003 경일대학교 사진영상학과 보도사진 및 순수사진 전공 학사
개인전
2019 《INDUSTRY BUSAN》, 고은사진미술관, 부산2018 《Völklingen 산업의 자연사》, 갤러리 월, 울산
2016 《INDUSTRY KOREA 2016》, 갤러리 지금 여기, 서울
2015 《INDUSTRY KOREA 2000~2015》, 코스모스갤러리, 울산 / 아트갤러리 전주, 전주
2014 《INDUSTRY KOREA 2014》, 울산문화예술회관, 울산
2013 《INDUSTRY KOREA 2013》, 갤러리 K, 서울, 아트갤러리 전주, 전주
0000 《INDUSTRY in the 90ʼs》, 영상아트갤러리, 울산
2002 《TOWNSCAPE》, 고토갤러리, 대구 / 울산문화예술회관, 울산
주요 단체전
2018 《문명 : 지금 우리가 사는 방법》, 국립현대미술관, 과천2015 《소란스러운, 뜨거운, 넘치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2014 《SPACE LIFE》, 일민미술관, 서울
2014 《파국 이후의 삶》, NPO 지원센터, 서울
2014 《산업사회의 초상》, 경북대학교미술관, 대구
2013 《근대성의 새발견 : 모단 떼끄놀로지는 작동중》, 문화역 서울 284, 서울
2013 《INDUSTRIAL LANDSCAPE》, 메이극장 갤러리, 오사카, 일본
2013 《울산 국제사진페스티벌 주제전》, 울산문화예술회관, 울산, 한국
2011 《지붕 없는 미술관》, 신화 마을 일대, 울산, 한국
2010~2012 《경남 현대 국제사진페스티벌》, 3.15 아트센터, 창원, 한국
2009 《젊은 정신-축제》, 한전 아트센터 갤러리, 서울, 한국
2007 《노동자》, 울산문화예술회관, 울산, 한국
2005 《K237-주거환경개량사업: 충격과 당혹의 도큐멘트》, 쌈지 스페이스, 서울, 한국 2005
0000 《광복 60주년 기념전 : 시련과 전진》, 국회의사당, 서울, 한국
2004 《사진 아카이브의 지형도-다큐먼트》, 서울시립미술관, 서울, 한국
2001 《개발, 그리고 또 다른 시작》, 고토갤러리, 대구, 한국
2000 《소외된 사람들》, 경주실내체육관, 경주, 한국
1997 《이 땅에 숨쉬며 남아 있는 것들》, 울산문화예술회관, 울산, 한국
1995 《개발, 그리고 그 이후 Ⅱ》, 울산문화예술회관, 울산, 한국
1994 《개발 그리고 그 이후》, 울산문화예술회관, 울산, 한국
공연
2016 《내 땅의 땀으로부터》, 2015-2016 한-불 상호교류의 해 공식 초청공연, 생 피에르 데 코흐, 프랑스0000 《내 땅의 땀으로부터》,
2015-2016 한-불 상호교류의 해 공식 초청공연, I SEOUL YOU, 거리예술창작소, 서울
2015 《철의 대성당》, 초청 공연, 프리슈티나, 코소보 / 안산
2014 《철의 대성당》, 초청 공연, 룩셈부르크 시티, 룩셈부르크
2014 《철의 대성당》, 초청 공연, 자르브뤼켄, 독일
2013 《철의 대성당》, 초청 공연, 샬롱, 프랑스 / 과천
출판
2018 『Völklingen 산업의 자연사』, 사월의 눈2014 『조춘만의 중공업』, 워크룸
2002 『TOWNSCAPE』, 자비출판
작품소장
국립아시아문화연구소, 울산박물관, 울산 고래박물관, 울산 법원, (주)영남파워조춘만 ChoonMan JO
1956 Born in Dalseong, Gyeongbuk, Korea
2003 B.F.A Dep. of Photography, Major in Photo Journalism & Fine Art Photography Kyungil University, Korea
Solo Exhibitions
2019 INDUSTRY BUSAN, GoEun Museum of Photography, Busan, Korea2018 Völklingen, Natural History of Industry, Gallery Wall, Ulsan, Korea
2016 INDUSTRY KOREA 2016, Gallery Now Here, Seoul, Korea
2015 INDUSTRY KOREA 2000~2015, Cosmos gallery, Ulsan, Art gallery Jeonju, Jeonju, Korea
2014 INDUSTRY KOREA 2014, Ulsan Culture & Art Center, Ulsan, Korea
2013 INDUSTRY KOREA, Gallery K, Seoul, Art gallery Jeonju, Jeonju, Korea
INDUSTRY in the 90ʼs, Yeoungsang Art gallery, Ulsan, Korea
2002 Townscape, Goto gallery, Daegu, Korea / Ulsan Culture & Art Center, Ulsan, Korea
Selected Group Exhibitions
2018 Civilization: The Way We Live Now, National Museum of Modern and Contemporary Art, Gwacheon, Korea2015 Uproarious, Heated, Inundated, National Museum of Modern and Contemporary Art, Seoul, Korea
2014 Space Life, Ilmin Museum of Art, Seoul, Korea
2014 Life after the Catastrophe, Seoul NPO center, Seoul, Korea
2014 Manufactured Landscape, Art Museum of Kyoungpook National University, Daegu, Korea
2013 Modernity and Technology, Culture Station Seoul 284, Seoul, Korea
2013 Industrial Landscape, May Theater Gallery (Suita City Culture Hall), Osaka. Japan
2013 Ulsan International Photography Festival, Ulsan Culture & Art Center, Ulsan, Korea
2011 Open Museum, Art Village Shinhwa, Ulsan, Korea
2010~2012 Gyeongnam International Modern Photography Festival, 3.15 Art Center, Changwon, Korea
2009 Jublee O’ Young Mind 2009, Kepco Art Center, Seoul, Korea
2007 A Laborer, Ulsan Culture & Art Center, Ulsan, Korea
2005 Construction, Ssamzie Space, Seoul, Korea
2005 A Trial and Forward Movement, The National Assembly building, Seoul, Korea
2004 Document: A Map of Photographic Archives, Seoul Museum of Art, Seoul, Korea
2001 Development, and another start, Goto gallery, Daegu, Korea
2000 Disadvantaged People, Kyungju Indoor Stadium, Kyungju, Korea
1997 The Things which are Breathing and Remaining in This Land, Ulsan Culture & Art Center, Ulsan, Korea
1995 Development, and Whereafter Ⅱ, Ulsan Culture & Art Center, Ulsan, Korea
1994 Development, and Whereafter, Ulsan Culture & Art Center, Ulsan, Korea
Performances
2016 À LA SUEUR DE MA TERRE, Invitation performance by 2015-2016 France-Korea Year, Saint-Pierre-des-coprs, France2016 À LA SUEUR DE MA TERRE, Invitation performance by 2015-2016 France-Korea Year, I SEOUL YOU, Street Arts Creation factory performance, Seoul, Korea
2015 Cathedrale d'acier, Invitation performance, Pristina, Kosovo / Ansan
2014 Cathedrale d'acier, Invitation performance, Luxembourg city, Luxembourg
2014 Cathedrale d'acier, Invitation performance, Saarbrücken, Germany
2013 Cathedrale d'acier, Invitation performance, Chalon, France / Gwacheon, Korea
Publications
2018 Völklingen, Natural History of Industry, Snow of April2014 Heavy Industry of Jo Choonman, Workroom
2002 Townscape, A private publish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