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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06

김용철 사진전

by PhotoView posted Jun 25,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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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제목 고등학생 눈으로 본, 37년 전 이산의 추억
전시기간 2020. 6. 19 ~ 7. 2
전시장소 Gallery 꽃피다
갤러리 주소 서울 중구 퇴계로36가길 50 (070-4035-3344)
갤러리 홈페이지 https://blog.naver.com/kkotpida-all
37년 전, 이산의 추억 37년 전 여름은 눈물겹게 뜨거웠다. 1983년 중반에 이르렀을 즈음, 텔레비전에서 애타게 가족을 찾는 울부짖음이 온 국민의 이목을 집중시켰고 눈물 없이는 볼 수 없었다. 방송의 장면들이 뇌리에 남아 잠이 오지 않았다. 억지로 눈을 감아 보는데 눈물이 콧등을 타고 흘러내렸다. 멋쩍게 손등으로 얼굴을 훔치며 필름이 얼마나 남아 있는지 생각하며 잠들었다. 막상 현장에 서 있으니 먹먹한 뭔가가 가슴에서 울컥 올라왔고, 너무 많은 사연들이 널려 있어 눈이 어지러웠다. 나는 셔터 한 번 누르지 못한 채 한참을 배회했다. 한 노인이 지쳤는지 쪽잠을 자고 있었다. 힘들었던 현대사를 고스란히 살아온 노인의 주름 깊은 손에는 자식의 인적사항이 적힌 종이 한 장이 꼭 쥐어져 있었다. 노인의 모습에서 내 부모님이 떠올랐다. 내겐 너무 무거운 풍경들이었다. 이 풍경의 무게를 버거워하며 멍하니 바라보고만 있는데, 어떤 아저씨가 불쑥 나타나 사진을 찍어 달라고 했다. 나는 얼떨결에 처음으로 셔터를 눌렀다. “방송에는 언제 나오나요? 꼭 좀 나오게 해 주세요!” 나는 미안해하며 기자가 아닙니다. 이건 방송용 카메라도 아니고요. 그냥 학생입니다.” “괜찮아요. 많이 찍어요. 누군가에겐 정말 중요한 사진이 될 거예요.” 이 말에 용기가 생겨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그때 나는 고등학교 3학년이었다. 누가 봐도 어리숙한 학생으로 보였을 텐데, 그 아저씨는 가족을 찾아야 한다는 절실함과 희망으로 내게 그런 부탁을 한 것 같았다. 사람들이 모여 있거나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리면 그곳으로 달려가 찍었다. 렌즈를 돌려 초점을 맞추는 내 손은 떨렸고 가슴은 두근거렸다. 고등학생이 뭘 알고 찍었을까. 나는 그저 필름 레버를 돌리고, 노출과 초점을 잘 맞추고, 흔들림에 주의하라는 설명서에 따랐을 뿐이었다. 하지만 어린 내 눈에도 애절함과 간절함, 뜨거운 혈육애와 꺼지지 않는 희망의 불씨는 고스란히 느껴졌다. 나는 그 지극한 그리움을 찍었다. 가족의 소중함을 찍었다. 한 지붕 아래서 식구끼리 밥을 먹고 잠을 자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소중하고 행복한 일인지 가슴 깊이 느낀 하루였다. 어느덧 37년의 세월이 흘렀다. 이 사진들은 사진이 뭔지도 모르던 어린 시절의 엉성한 작업에 지나지 않는다. 접시 물 보다 얕은 실력과 극도로 빈약한 작업량……. 그렇지만 내 사진 인생의 첫 결과물이라 그런지 깊은 애착이 간다. 2020년 6월 9일 사진가 김용철
  • ⓒ김용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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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년 전, 이산의 추억


37년 전 여름은 눈물겹게 뜨거웠다.
1983년 중반에 이르렀을 즈음, 텔레비전에서 애타게 가족을 찾는 울부짖음이 온 국민의 이목을 집중시켰고 눈물 없이는 볼 수 없었다.
방송의 장면들이 뇌리에 남아 잠이 오지 않았다. 억지로 눈을 감아 보는데 눈물이 콧등을 타고 흘러내렸다. 멋쩍게 손등으로 얼굴을 훔치며 필름이 얼마나 남아 있는지 생각하며 잠들었다.
막상 현장에 서 있으니 먹먹한 뭔가가 가슴에서 울컥 올라왔고, 너무 많은 사연들이 널려 있어 눈이 어지러웠다.
나는 셔터 한 번 누르지 못한 채 한참을 배회했다. 한 노인이 지쳤는지 쪽잠을 자고 있었다. 힘들었던 현대사를 고스란히 살아온 노인의 주름 깊은 손에는 자식의 인적사항이 적힌 종이 한 장이 꼭 쥐어져 있었다. 노인의 모습에서 내 부모님이 떠올랐다.
내겐 너무 무거운 풍경들이었다. 이 풍경의 무게를 버거워하며 멍하니 바라보고만 있는데, 어떤 아저씨가 불쑥 나타나 사진을 찍어 달라고 했다. 나는 얼떨결에 처음으로 셔터를 눌렀다.
“방송에는 언제 나오나요? 꼭 좀 나오게 해 주세요!”
나는 미안해하며 기자가 아닙니다. 이건 방송용 카메라도 아니고요. 그냥 학생입니다.”
“괜찮아요. 많이 찍어요. 누군가에겐 정말 중요한 사진이 될 거예요.”
이 말에 용기가 생겨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그때 나는 고등학교 3학년이었다. 누가 봐도 어리숙한 학생으로 보였을 텐데, 그 아저씨는 가족을 찾아야 한다는 절실함과 희망으로 내게 그런 부탁을 한 것 같았다.
사람들이 모여 있거나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리면 그곳으로 달려가 찍었다.
렌즈를 돌려 초점을 맞추는 내 손은 떨렸고 가슴은 두근거렸다.
고등학생이 뭘 알고 찍었을까. 나는 그저 필름 레버를 돌리고, 노출과 초점을 잘 맞추고, 흔들림에 주의하라는 설명서에 따랐을 뿐이었다.
하지만 어린 내 눈에도 애절함과 간절함, 뜨거운 혈육애와 꺼지지 않는 희망의 불씨는 고스란히 느껴졌다. 나는 그 지극한 그리움을 찍었다. 가족의 소중함을 찍었다. 한 지붕 아래서 식구끼리 밥을 먹고 잠을 자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소중하고 행복한 일인지 가슴 깊이 느낀 하루였다.
어느덧 37년의 세월이 흘렀다.
이 사진들은 사진이 뭔지도 모르던 어린 시절의 엉성한 작업에 지나지 않는다. 접시 물 보다 얕은 실력과 극도로 빈약한 작업량……. 그렇지만 내 사진 인생의 첫 결과물이라 그런지 깊은 애착이 간다.

2020년 6월 9일
사진가 김용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