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낳기로 결정했다
벌써 22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22년 전에는 나도 처음이었다. 나의 엄마도 내가 처음이었듯.
내 몸 안에서 나와 다른 생명이 함께 공존했다.
38주 266일이라는 시간동안.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낯섬’ 그 자체였다.
열달내내 절대 익숙해지지 않는.............
“결혼 전 입던 옷을 눈에 잘 보이는 곳에 걸어두세요”
구역질, 폭식, 거대해지는 몸, 숨쉬기 힘든 걸음걸이......
내 몸 하나 건사하기 힘든 시간에,
10분 이상 들어본 적 없는 클래식을 들으라 하고
튀어나온 배를 부여잡고 바느질을 하라고 하며
누군가 소리없이 강요를 하고 있었다.
그 누구는 나의 남편도 아니였고 나의 엄마도 아니였다.
나를 알지도 못하는 ‘타인들’이었고, ‘사회’였다.
“불안 초조한 마음이 들 때는 십자수를 놓으며 잡념을 버립니다”
임신의 주체인 여성의 몸에 대한 배려는 20년이라는 시간이 지난 지금에도 변함없이 ‘없었다’. 얼마 전 서울시 임신출산정보센터에 올라온 매뉴얼은 경악 그 자체, 아니 어처구니가 없었다. 지저분한 머리를 정리하는 머리띠 준비, 남성의 욕구를 우선으로 고려한 섹스 지침, 사이즈가 넉넉한 ‘아줌마팬티’ 준비하기, 결혼 전에 입었던 옷이나 출산 후 입고 싶은 작은 사이즈 옷을 사서 눈에 잘 보이는 곳에 걸어두며 식욕 억제하기, 태어날 아기를 위해 소리내어 웃는 연습하기.......
‘이것은 해야한다’, ‘이것은 하지 말아야한다’ 이분법적인 강요뿐이다. 개인의 취향과 선택은 중요하지 않아 보였다.
10여 년 전 렌즈 앞에서 섰던 그녀들을 다시 마주했다.
사회적 강요를 뛰어넘고자 했던 그녀들은 ‘그 너머’, ‘창밖’으로 나왔을까?
2021년 세상이 아주 많이 변해서 여성이 살기 편한 대한민국 서울에서 임신 8개월의 경은이를 만났다.
‘저도 처음이라 아직 잘 모르겠어요. 태교는 딱히...동화책읽어주기 정도? 제맘 편한게 젤 좋은거 아닌가요’
자신의 몸에 대한 통제는 반드시 누려야 할 자유임에도, 우리 여자들은 이를 한번도 당연하게 여길수 없었다. 우리는 우리에게서 끊임없이 몸을 빼앗을 음모를 꾸미는, 우리가 재생산을 하겠다거나 하지 않겠다고 권리를 행사할 때마다 처벌하려 드는 사회에서 살고 있지만 이 사회의 존립 자체는 우리 여자들에게 달려 있다. ...... 임신한 사람이 잘하고 있다거나 못하고 있다는 평가를 그만둘 때 비로소 진실을 말할 수 있다. 우리 모두가 그저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진실 말이다. 근본적으로 우리 모두에게는 똑같은 것이 주어졌다. 바로 우리의 몸이다. 몸은 모두 같으면서 동시에 무한히 다양하기에 경이롭다. 앤젤라 가브스 <페미니스트, 엄마가 되다> 중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순간 느닷없이 동결된 시간. 그 속에서 감정이 가리워진 그녀들은 일종의 빚어진 형상처럼 덩그러니 전시되었다.
물리적 세계마저 멈춘 듯한 그 곳엔, 마땅히 있어야 할 것만 같은 일종의 정보들이 사진의 가장자리를 채우고 있다. 절묘하게 놓인 결혼사진, 파트너로 읽히는 그의 발, 어질러진 장난감, 불필요해 보이는 TV홈쇼핑 등은 공간마저 오류에 빠진 듯 인위적으로 보인다.
정지된 장면 속에서 그녀들은 비밀리에 하지만 차분하고도 꿋꿋하게 자신만의 동굴을 만들며 버티고 있다. 그리고는 기나긴 숙고 끝에 내린 결정이자, 해답을 찾거나 본질을 깨달은 사람의 태도로 이렇게 선언한다.
‘나는 낳기로 결정했다’
‘나는 낳기로 결정했다’니...
조금은 느닷없이 들리는 이 선언은, 다른 변수들을 넣어 달리 말하자면 ‘낳지 않기로 결정할 수도 있다’이지 않은가.
행복하려고 선택한 삶에 이토록 비장하고 단호한 결심까지 동원되어야 한다면 그것은 과연 적절한가? 우리 사회는 이 문장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그녀들은 또 다른 누군가의 꿈 속 일수도 있겠다. 그녀들과 연결된 또 다른 세계의 누군가가 반죽해낸 덩어리. 꿈의 주체인 그들은 이렇게 말할지도 모르겠다. ‘나는 태어나기로 결심했다’거나 ‘나는 살아내기로 결심했다’로.
갤러리 사진적 3월 전시는 정지현 작가의 사진전입니다.
물리적 세계마저 멈춘 듯한 그 곳엔, 마땅히 있어야 할 것만 같은 일종의 정보들이 사진의 가장자리를 채우고 있다. 절묘하게 놓인 결혼사진, 파트너로 읽히는 그의 발, 어질러진 장난감, 불필요해 보이는 TV홈쇼핑 등은 공간마저 오류에 빠진 듯 인위적으로 보인다.
정지된 장면 속에서 그녀들은 비밀리에 하지만 차분하고도 꿋꿋하게 자신만의 동굴을 만들며 버티고 있다. 그리고는 기나긴 숙고 끝에 내린 결정이자, 해답을 찾거나 본질을 깨달은 사람의 태도로 이렇게 선언한다.
‘나는 낳기로 결정했다’
‘나는 낳기로 결정했다’니...
조금은 느닷없이 들리는 이 선언은, 다른 변수들을 넣어 달리 말하자면 ‘낳지 않기로 결정할 수도 있다’이지 않은가.
행복하려고 선택한 삶에 이토록 비장하고 단호한 결심까지 동원되어야 한다면 그것은 과연 적절한가? 우리 사회는 이 문장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그녀들은 또 다른 누군가의 꿈 속 일수도 있겠다. 그녀들과 연결된 또 다른 세계의 누군가가 반죽해낸 덩어리. 꿈의 주체인 그들은 이렇게 말할지도 모르겠다. ‘나는 태어나기로 결심했다’거나 ‘나는 살아내기로 결심했다’로.
갤러리 사진적 3월 전시는 정지현 작가의 사진전입니다.
나는 낳기로 결정했다
벌써 22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22년 전에는 나도 처음이었다. 나의 엄마도 내가 처음이었듯.
내 몸 안에서 나와 다른 생명이 함께 공존했다.
38주 266일이라는 시간동안.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낯섬’ 그 자체였다.
열달내내 절대 익숙해지지 않는.............
“결혼 전 입던 옷을 눈에 잘 보이는 곳에 걸어두세요”
구역질, 폭식, 거대해지는 몸, 숨쉬기 힘든 걸음걸이......
내 몸 하나 건사하기 힘든 시간에,
10분 이상 들어본 적 없는 클래식을 들으라 하고
튀어나온 배를 부여잡고 바느질을 하라고 하며
누군가 소리없이 강요를 하고 있었다.
그 누구는 나의 남편도 아니였고 나의 엄마도 아니였다.
나를 알지도 못하는 ‘타인들’이었고, ‘사회’였다.
“불안 초조한 마음이 들 때는 십자수를 놓으며 잡념을 버립니다”
임신의 주체인 여성의 몸에 대한 배려는 20년이라는 시간이 지난 지금에도 변함없이 ‘없었다’. 얼마 전 서울시 임신출산정보센터에 올라온 매뉴얼은 경악 그 자체, 아니 어처구니가 없었다. 지저분한 머리를 정리하는 머리띠 준비, 남성의 욕구를 우선으로 고려한 섹스 지침, 사이즈가 넉넉한 ‘아줌마팬티’ 준비하기, 결혼 전에 입었던 옷이나 출산 후 입고 싶은 작은 사이즈 옷을 사서 눈에 잘 보이는 곳에 걸어두며 식욕 억제하기, 태어날 아기를 위해 소리내어 웃는 연습하기.......
‘이것은 해야한다’, ‘이것은 하지 말아야한다’ 이분법적인 강요뿐이다. 개인의 취향과 선택은 중요하지 않아 보였다.
10여 년 전 렌즈 앞에서 섰던 그녀들을 다시 마주했다.
사회적 강요를 뛰어넘고자 했던 그녀들은 ‘그 너머’, ‘창밖’으로 나왔을까?
2021년 세상이 아주 많이 변해서 여성이 살기 편한 대한민국 서울에서 임신 8개월의 경은이를 만났다.
‘저도 처음이라 아직 잘 모르겠어요. 태교는 딱히...동화책읽어주기 정도? 제맘 편한게 젤 좋은거 아닌가요’
자신의 몸에 대한 통제는 반드시 누려야 할 자유임에도, 우리 여자들은 이를 한번도 당연하게 여길수 없었다. 우리는 우리에게서 끊임없이 몸을 빼앗을 음모를 꾸미는, 우리가 재생산을 하겠다거나 하지 않겠다고 권리를 행사할 때마다 처벌하려 드는 사회에서 살고 있지만 이 사회의 존립 자체는 우리 여자들에게 달려 있다. ...... 임신한 사람이 잘하고 있다거나 못하고 있다는 평가를 그만둘 때 비로소 진실을 말할 수 있다. 우리 모두가 그저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진실 말이다. 근본적으로 우리 모두에게는 똑같은 것이 주어졌다. 바로 우리의 몸이다. 몸은 모두 같으면서 동시에 무한히 다양하기에 경이롭다. 앤젤라 가브스 <페미니스트, 엄마가 되다> 중에서
정지현 Jung Jihyun
2013년 상명대학교 예술디자인대학원 사진영상미디어학과 비주얼아트전공 졸업
개인전
2020 Part1. Post-Memory : sticky scenery 갤러리 사진적
2020 Part2. Post-Memory : uncomfortable grumbling 사진위주 류가헌
2014 평택시 팽성읍 대추리, 803일간의 기록, 한평갤러리, 제1회수원화성국제사진전
2013 미영 은정 현주 그리고 ......, 갤러리룩스
2012 The Shaded Scenery, 갤러리룩스
단체전
2019 사진집단 포토청 ‘분단 70년의 표상’ 경인미술관
2017 사진집단 포토청 촛불항쟁 기록 사진전 ‘우리는 촛불을 들었다’ 토포하우스
2009 상명대학교 문화예술대학원 순수사진전동 단체전 ‘시간의 부드러운 틈’ 갤러리룩스
2006 사진집단 포토청 ‘우리 사회의 틈에 대한 사진적 해석’ 세종문화 회관
그 외 다수
2020 [신진미술인 지원을 통한 일상전시 사업]선정작가, 서울시문화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