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은 기억의 확장을 위한 기록이며 증거로서 훌륭한 기능을 수행한다. 사진이 예술로서 역할을 한다고, 아니 해야 한다고 말하든 말든 기록의 적자이며 여전히 그 자체만으로 흥미로운 일이다. 사진은 존재에 대한 가장 손쉬운, 그러나 애매한 증거이기도하다. 가장 확실한 사실이라고 믿게 함으로서 큰 오류에 빠뜨리게 하는 것 또한 사진이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사진에다 다른 정황을 남기고 싶은 것이다. 어느 이름 모를 젊은 여인들의 빛바랜 사진 한 장에 쓰여 있는 <꽃 시절에 친우를 부여잡고, 단기 4292년 3월5일>이라는 선명한 글귀를 마주하노라면 야릇한 감회 같은 것이 서린다.
우선 누군가에게 있었을 청춘이 새삼스럽다. 단기4292년이라니 이 흑백 사진에서 결의에 차게 두 손을 움켜쥐고 앞을 바라보는 당차보이는 젊은 여성들은 촬영당시(1959년) 20세쯤 된다고 치면 지금 쯤 일흔 후반에 접어들었거나 그 이상으로 이미 고인이 되었을 수도 있다. 우리는 생판 모르는 남의 사진을 보고 왜 마음이 흔들릴까? 이것이 사진이 아닌 다른 분야에서 쉽게 가능한 일일까 하는 궁금증이 든다.
이번에 선보이는 사진들은 인간이 자신의 존재를 얼마나 진지하게 혹은 흥미롭게 증명하고 밝히려고 하는지에 대한 관찰이다. 사진이라는 기록이외의 또 다른 글귀를 써넣음으로서 더욱 굳건한 ‘안전장치’를 하고 있다. 단순히 년 월을 표시하는 것도 있지만 당시의 유행이나 상황 혹은 심경을 적어 넣음으로 더욱 '특별'하게 하고자 한 것이다. 그런데 사진이라는 ‘증거’ 속에 아로 새겨진 대부분의 글씨들이 사실을 더욱 진지하게 하기보다는 재미있게 느껴진다는 점이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개인의 기억이 그 시대의 모든 이들에게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리고 이 모든 이의 향수가 바로 역사이기도 한 것이다.
사진의 의외성은 또 있다. 때로는 작가가 작품을 염두에 두고 찍은 사진보다 무심이 찍은 일반 사진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경우도 많다.
여기에 찍힌 사람들은 노인들은 물론 아이들까지 바람처럼 흘러간 시간 속에서 늙고 사라져갔거나 노인이 되었을 것이다. 사진 속에서 ‘빛나는 혼인계 굳세게 나가세.’ 의 주인공들은 결혼생활을 무사히 잘 했을 것으로 믿는다. 그러면서도 고달팠을 삶에 연민이 간다.
더불어 사진 속의 인물이나 주위의 어른들에게 지난날의 추억과 힘든 인생 속에서도 자신의 ‘꽃 시절’은 언제 인지 되돌아보게 하는 ‘동영상’도 함께 보여준다.
사진은 기억의 확장을 위한 기록이며 증거로서 훌륭한 기능을 수행한다. 사진이 예술로서 역할을 한다고, 아니 해야 한다고 말하든 말든 기록의 적자이며 여전히 그 자체만으로 흥미로운 일이다. 사진은 존재에 대한 가장 손쉬운, 그러나 애매한 증거이기도하다. 가장 확실한 사실이라고 믿게 함으로서 큰 오류에 빠뜨리게 하는 것 또한 사진이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사진에다 다른 정황을 남기고 싶은 것이다. 어느 이름 모를 젊은 여인들의 빛바랜 사진 한 장에 쓰여 있는 <꽃 시절에 친우를 부여잡고, 단기 4292년 3월5일>이라는 선명한 글귀를 마주하노라면 야릇한 감회 같은 것이 서린다.
우선 누군가에게 있었을 청춘이 새삼스럽다. 단기4292년이라니 이 흑백 사진에서 결의에 차게 두 손을 움켜쥐고 앞을 바라보는 당차보이는 젊은 여성들은 촬영당시(1959년) 20세쯤 된다고 치면 지금 쯤 일흔 후반에 접어들었거나 그 이상으로 이미 고인이 되었을 수도 있다. 우리는 생판 모르는 남의 사진을 보고 왜 마음이 흔들릴까? 이것이 사진이 아닌 다른 분야에서 쉽게 가능한 일일까 하는 궁금증이 든다.
이번에 선보이는 사진들은 인간이 자신의 존재를 얼마나 진지하게 혹은 흥미롭게 증명하고 밝히려고 하는지에 대한 관찰이다. 사진이라는 기록이외의 또 다른 글귀를 써넣음으로서 더욱 굳건한 ‘안전장치’를 하고 있다. 단순히 년 월을 표시하는 것도 있지만 당시의 유행이나 상황 혹은 심경을 적어 넣음으로 더욱 '특별'하게 하고자 한 것이다. 그런데 사진이라는 ‘증거’ 속에 아로 새겨진 대부분의 글씨들이 사실을 더욱 진지하게 하기보다는 재미있게 느껴진다는 점이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개인의 기억이 그 시대의 모든 이들에게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리고 이 모든 이의 향수가 바로 역사이기도 한 것이다.
사진의 의외성은 또 있다. 때로는 작가가 작품을 염두에 두고 찍은 사진보다 무심이 찍은 일반 사진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경우도 많다. 여기에 찍힌 사람들은 노인들은 물론 아이들까지 바람처럼 흘러간 시간 속에서 늙고 사라져갔거나 노인이 되었을 것이다. 사진 속에서 ‘빛나는 혼인계 굳세게 나가세.’ 의 주인공들은 결혼생활을 무사히 잘 했을 것으로 믿는다. 그러면서도 고달팠을 삶에 연민이 간다.
더불어 사진 속의 인물이나 주위의 어른들에게 지난날의 추억과 힘든 인생 속에서도 자신의 ‘꽃 시절’은 언제 인지 되돌아보게 하는 ‘동영상’도 함께 보여준다.
우선 누군가에게 있었을 청춘이 새삼스럽다. 단기4292년이라니 이 흑백 사진에서 결의에 차게 두 손을 움켜쥐고 앞을 바라보는 당차보이는 젊은 여성들은 촬영당시(1959년) 20세쯤 된다고 치면 지금 쯤 일흔 후반에 접어들었거나 그 이상으로 이미 고인이 되었을 수도 있다. 우리는 생판 모르는 남의 사진을 보고 왜 마음이 흔들릴까? 이것이 사진이 아닌 다른 분야에서 쉽게 가능한 일일까 하는 궁금증이 든다.
이번에 선보이는 사진들은 인간이 자신의 존재를 얼마나 진지하게 혹은 흥미롭게 증명하고 밝히려고 하는지에 대한 관찰이다. 사진이라는 기록이외의 또 다른 글귀를 써넣음으로서 더욱 굳건한 ‘안전장치’를 하고 있다. 단순히 년 월을 표시하는 것도 있지만 당시의 유행이나 상황 혹은 심경을 적어 넣음으로 더욱 '특별'하게 하고자 한 것이다. 그런데 사진이라는 ‘증거’ 속에 아로 새겨진 대부분의 글씨들이 사실을 더욱 진지하게 하기보다는 재미있게 느껴진다는 점이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개인의 기억이 그 시대의 모든 이들에게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리고 이 모든 이의 향수가 바로 역사이기도 한 것이다.
사진의 의외성은 또 있다. 때로는 작가가 작품을 염두에 두고 찍은 사진보다 무심이 찍은 일반 사진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경우도 많다. 여기에 찍힌 사람들은 노인들은 물론 아이들까지 바람처럼 흘러간 시간 속에서 늙고 사라져갔거나 노인이 되었을 것이다. 사진 속에서 ‘빛나는 혼인계 굳세게 나가세.’ 의 주인공들은 결혼생활을 무사히 잘 했을 것으로 믿는다. 그러면서도 고달팠을 삶에 연민이 간다.
더불어 사진 속의 인물이나 주위의 어른들에게 지난날의 추억과 힘든 인생 속에서도 자신의 ‘꽃 시절’은 언제 인지 되돌아보게 하는 ‘동영상’도 함께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