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력
강원 태백 출생
강원관광대학교 산업경영학과 졸업
태백관광개발공사 오투리조트 퇴사
온빛 다큐멘터리 회원
수상경력
2010년 제24회 강원도 사진대전 대상 수상
2013년 제1회 최민식 사진상 특별상 대상 수상
2016년 제6회 온빛 타큐멘타리 사진가상 수상
개인전
2014년 “아버지는 광부였다” 개인전
(서울 인사동 경인미술관6관 7월23일 ~ 7월29일까지)
2015년 기획전 및 개인전 ‘검은 땅 우금(于今)에 서다’
(서울 갤러리 브레송 10월23일 ~ 10월31일)
2016년 “아버지의 그늘” 개인전
(서울 갤러리 브레송 05월06일 ~ 05월20일)
2017년 “아버지의 삶” 개인전
(서울 류가헌 01월10일 ~ 01월22일)
단체전
2014년 대한민국 국회초대전 “웅비하는 대한민국 그러게 말이다”
02.12~02.21 국회의원회관 신관로비 초대전
2014년 “제5차 중국연변 국제사진문화 주간” 초대전
연변 국제 컨벤션 전시 센터
2014년 “2014대한민국 국제포토페스티벌” 초대전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 미술관 10월8일~10월15일까지)
2015년 “빠른 세상, 천천히 보기” 제4회 한국리얼다큐사진가회
회원전, (토포하우스 아트센터) 2015.10.7.(수)-13(화)
2016년 “제3회 수원 국제 사진축제“ 특별 초대전
2016,10,01~2016,10,30(수원 제일교회 노을빛 갤러리)
2017년 “미술터미널_작은미술관 기획전시”
2016.12.16.(금)~2017.1.8.(일)-고안사북 터미널
저 서
2014년 “아버지는 광부였다” 사진집 출판
2015년 “검은 땅 우금(于今)에 서다” 사진집 출판
2016년 “아버지의 그늘” 사진집 출판
신문사 연재
한겨레신문(사진마을) : 2015,05,15,~ 2016,09,11일까지 (68회 연재).
http://photovil.hani.co.kr/photographer
방송출연
KBS 황금연못 출연-2016년 1월9일
MBC 생방송 강원365 5회 출연
나의 고향 태백, 그 중에서도 내가 태어나고 자란 장성은 그 향수를 온전히 느낄 수 있는 공간이다. 어린시절, 탄광촌에서 살면서 보고 느끼고 들었던 많은 기억들이 있다. 여기저기 흩어 진 석탄 부수러기들이 냇물과 섞여서 거무내(검은 시냇물)가 되어 흐르던 모습이라든가, 삼삼오오 모여 출근하고 퇴근하는 광부들의 모습이 어렴풋이 머릿속에 남아 있다.
당시 한국의 어디든, 격랑의 시대를 겪지 않은 곳이 없었겠지만, 태백의 탄광촌은 한층 격렬했다. 찬란했던 거리의 모습과 쇠퇴해가던 거리의 모습이 상극을 이루었다. 너도나도 삽을 들고 탄 푸러 가던 시절, 개가 만원짜리 지폐를 물고 다녔다고 할 정도로 풍족해서, 뭉칫돈을 들고 서울로 향하는 사람과, 도박이나 술로 몰락하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룰 정도였다. 그러나, 빠르게 승승장구하던 태백의 거리들은, 88올림픽 이후, 합리화 정책이란 비명아래 광업소의 문들이 줄줄이 닫히고, 휘발유, 경유 등의 도입으로 줄어든 석탄의 생산과,소비와 함께 순식간에 스러져 갔다,
그러던 중 태백을 잠시 떠나 있었던 나는, 무엇엔가 이끌리듯 그 때의 기억속으로 다시 돌아왔다. 귀향길에서 보았던 것은, 떠나간 사람들의 발자취 속에 아직 묻어 있는 검은 탄의 모습이었다. 오래전의 그 기억들이 완전히 사라지기전, 지금 당장 사진으로 남겨 기록하는 것이 내 숙명임을 직감하게 되었다.
아직도 이곳에서는 광부들이 탄을 많이 캐고 있지만, 그 수나 양은 현저히 줄어드는 실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에 남아 있는 광부들은 얼굴에 탄진을 묻혀가며 지금 이시간에도 지하 천 미터에서 석탄을 캐고 있다. 캄캄한 막장, 거친 숨소리.....
어두운 석탄 더미속에서 광부들과 함께 온 몸에 가루를 맞으며 그 치열한 흑백의 기록을 담은 후 세상 밖으로 나오면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의 소중함이 뼈저리게 느껴진다.
그 곳에서 일했을 아버지를 생각하니, 사진을 허투루 찍을 수 없었다. 찍은 사진을 아버지에게 모두 보여 드리고 싶었다.
기억을 온전히 남겨두는 것은, 사진작가에게도 중요하지만, 현장에 있었을 당사자에게도, 그것을 알아야 하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너무나 소중한 일일 것이므로.
아버지는 광부였다
1. 사진 작업의 개요
나의 고향 태백, 그 중에서도 내가 태어나고 자란 장성은 그 향수를 온전히 느낄 수 있는 공간이다. 어린시절, 탄광촌에서 살면서 보고 느끼고 들었던 많은 기억들이 있다. 여기저기 흩어 진 석탄 부수러기들이 냇물과 섞여서 거무내(검은 시냇물)가 되어 흐르던 모습이라든가, 삼삼오오 모여 출근하고 퇴근하는 광부들의 모습이 어렴풋이 머릿속에 남아 있다.
당시 한국의 어디든, 격랑의 시대를 겪지 않은 곳이 없었겠지만, 태백의 탄광촌은 한층 격렬했다. 찬란했던 거리의 모습과 쇠퇴해가던 거리의 모습이 상극을 이루었다. 너도나도 삽을 들고 탄 푸러 가던 시절, 개가 만원짜리 지폐를 물고 다녔다고 할 정도로 풍족해서, 뭉칫돈을 들고 서울로 향하는 사람과, 도박이나 술로 몰락하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룰 정도였다. 그러나, 빠르게 승승장구하던 태백의 거리들은, 88올림픽 이후, 합리화 정책이란 비명아래 광업소의 문들이 줄줄이 닫히고, 휘발유, 경유 등의 도입으로 줄어든 석탄의 생산과,소비와 함께 순식간에 스러져 갔다,
그러던 중 태백을 잠시 떠나 있었던 나는, 무엇엔가 이끌리듯 그 때의 기억속으로 다시 돌아왔다. 귀향길에서 보았던 것은, 떠나간 사람들의 발자취 속에 아직 묻어 있는 검은 탄의 모습이었다. 오래전의 그 기억들이 완전히 사라지기전, 지금 당장 사진으로 남겨 기록하는 것이 내 숙명임을 직감하게 되었다.
아직도 이곳에서는 광부들이 탄을 많이 캐고 있지만, 그 수나 양은 현저히 줄어드는 실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에 남아 있는 광부들은 얼굴에 탄진을 묻혀가며 지금 이시간에도 지하 천 미터에서 석탄을 캐고 있다. 캄캄한 막장, 거친 숨소리.....
어두운 석탄 더미속에서 광부들과 함께 온 몸에 가루를 맞으며 그 치열한 흑백의 기록을 담은 후 세상 밖으로 나오면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의 소중함이 뼈저리게 느껴진다. 그 곳에서 일했을 아버지를 생각하니, 사진을 허투루 찍을 수 없었다. 찍은 사진을 아버지에게 모두 보여 드리고 싶었다.
기억을 온전히 남겨두는 것은, 사진작가에게도 중요하지만, 현장에 있었을 당사자에게도, 그것을 알아야 하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너무나 소중한 일일 것이므로.
2. 작업과정
나는 내가 살던 곳과 아버지가 일했을 탄광을 집중적으로 조사했다. 몇 년의 시간으로는 부족했다. 같은 동네를 밤낮으로 가보고 계절마다 가보았다. 그럴 때마다 새로운 감정들이 느껴졌고, 끊임없이 셔터를 눌렀다. 철암과 장성을 샅샅이 돌면서 알게 된 건,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찬란했던 과거를 기억하고 있다는 거였다. 물론, 비참하고 불운한 상처들도 많았다.
왜 안 그랬겠는가? 지난한 탄광촌의 삶에서 무슨 일이든 못 겪었으랴.....
그 곳 사람들의 수많은 삶의 타래들을 담으며, 컬러가 아닌 흑백으로 찍자고 생각했다. 흑백이 주는 따뜻하고도 정겨운 이미지들이, 과거의 추억들을 생생하게 전달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흑백사진 속의 사람들, 풍경들이 짙은 탄 냄새를 풍기는 것 같았다. 그 중, 흑백사진이 제대로 힘을 발휘한 곳은 바로 막장 안이었다. 광부들의 격정적인 움직임, 지치고 피곤한 그들의 얼굴들을 화면 안에 담다보면, 사진을 찍는 입장에서도 긴장되고 숙연해 질 정도였다.
광부들의 여러 다양한 모습도 보여 주어야 했고, 앞이 분간 안 될 정도로 뿌연 분진이 사방에서 흩날리는 막장 안을 제대로 전달할 수 있어야 했는데, 그 역할을 흑백사진이 톡톡히 해 주었다.
나는 부단히 기록을 해 나갔고, 이제는 탄광촌의 매력을 잘 느낄 수 있는 사진들을 조심스레 꺼내려고 한다.
3. 사진의 의미
한 장의 사진이 주는 매력은 무궁무진하다. 셔터를 누르는 순간, 그 사진은 온전히 내 것이기도 하지만, 또한 사진을 보는 독자의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누군가에게는 중요한 역사적 자료가 되기도 할 것이다.
나는 광부를 찍었다, 동시에 아버지를 찍은 것이기도 했다.
그를 생각하며, 그의 일생을 담기 위해 노력했다. 이제 이 모든 것을 독자들, 탄광촌의 모든 사람들, 그리고 아버지에게 바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