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 - 한문순 Han moonsoon : 여기, 우리가 만나는, Here we me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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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노트_한문순
#장면1
"존, 이번 제 전시 작품에 대한 당신의 의견을 말해줄 수 있나요?"
"자네, 내가 이전에 이라크 시인 압둘카림 카시드의 시에 대한 감상을 말해주면서 프랑스 단어인 S.D.F(일정한
주거지가 없이 떠돌아 사는 사람들)에 대해 얘기해 준 것을 기억하나? 자네의 작품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S.D.F
상태를 보여주는 것 같았네. 매일 매일의 삶은 있지만 그걸 둘러싸고 있는 건 공백이고, 그 공백 안에서 수백만 명의
우리는 오늘 홀로 있다고 하지 않았나! 나는 자네 작품에서 동물들이 그런 상태로 있다는 느낌을 받았네."
<우리가 아는 모든 언어 中에서 재구성>
#장면2
"존, 그럼 제 작품의 의도를 S.D.F상태인 동물의 현실을 드러내고자 하는 것이라고 판단하고 계신가요?"
"자네, 내가 어려서부터 존경해 마지않아 폴란드를 사랑하게 만든 장본인이 바로 로자 룩셈부르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지 않나! 로자 룩셈부르크는 '아무리 다수라고 하더라도 특정 계층을 위한 자유는 전혀 자유가 아니다! 자유는
언제나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의 자유여야 한다. 정의라는 관념에 대한 열광 때문이 아니다. 자유가 특권이 될 때
그 효용성도 사라질 것이다'라고 하였다네. 그런 맥락에서 자네는 동물들이 진정한 자유를 누리고 있는
아르카디아의 삶을 포착한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네." <풍경들 中에서 재구성>
#장면3
"존, 당신은 제 작품의 의미와 가치가 '동물의 자유'에 기반한다고 생각하신 건가요?"
"자네, 내가 말했던 사진의 의미에 대한 내용을 떠올려보게. 사진은 주어진 상황에서 실행되는 인간의 선택에 대한
증거라고 했지. 사진은 이 특정한 사건, 혹은 보이는 이 특정한 대상이 기록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한 사진가의
선택의 결과라네. 사진은 사건 자체도 시각 능력 자체도 찬양하지 않는다네. 사진은 작가가 '나는 이것을 보는 행위가
기록으로 남길 만한 가치가 있다고 결정했다'라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라네. 결국 자네는 '이 작품이 유심히 들여다
볼 가치가 있다는 작가의 믿음은, 이미 그 안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작가가 보여 주지 않기로 한 모든 것들에
비례한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봐야겠지. 이런 점에서 내 의견보다는 자네의 자세가 더 중요한 것 아니겠나?"
<사진의 이해 中에서 재구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