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0 - 월간사진 2019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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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운 이의 죽음은 다양한 흔적을 남긴다. 우리는 남겨진 흔적을 보며 죽은 이를 기억 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다. 그래서 카메라 테크닉을 통해 사물을 시간의 틈새에 위치
하고 추모한다. 박승만의 작업은 할아버지의 죽음을 경험한 뒤 시작됐다. 그는 주인이 시키거나, 중력에 맞대응시켜보기로 했다. 불규칙한 공간 안에 부유하는 사물을 연출
떠나고 용도를 잃은 채 남겨진 집과 유품의 ‘현재 상태’, 더 나아가 그것들의 존재 의미 하는 것이 그 시작인 셈이다.
에 주목하게 되었다. 공간과 사물의 관계를 중심으로 한 박승만의 작업은 삶과 죽음, 이
승과 저승, 현실과 가상이라는 경계 위에 있는 듯하다. 이는 시간과 중력을 거스르는 것 실내 설치, 순간을 포착하다
처럼 보이는 사진적 구성에서 유추할 수 있다. 인간의 죽음은 이원론적 관점(인간은 육
박승만의 작업은 협업이 필수다. 공중에 사물을 설치하는 것은 절대 혼자서 할 수 없기
체와 영혼으로 구성)과 물리학적 관점(인간은 육체 그 자체)으로 구분된다. 다시 말해,
에 늘 두 명 이상의 스태프와 함께한다. 셔터스피드를 이용해 순간 포착하려면 사물을
인간을 ‘영혼-신체’로 구분 짓거나, ‘물리적-생물적 존재’로 바라본다는 의미다. 박승
수십 번 공중에 던져야 할 때도 있다. 지붕에 올라가는 일도 허다하다. 안전의 위험이 늘
만은 사물이 가진 물리적 재료를 통해 대상의 영혼을 바라보는 것에 집중한다. 여기서
도사리고 있다. 체계화된 작업을 위해서는 정확한 업무 분담이 필요하다.
그가 말하는 영혼이란 미신적·신앙적인 것이 아닌, 비가시적이면서 우리가 상상할 수
작업의 주된 프로세스는 실내 설치다. 실내에서 사물을 여러 번 던진 후 카메라를 이용
있는 ‘이면’에 관한 것이다.
해 순간 포착하는 일은 여러모로 제한이 많다. 실내다 보니 빛이 부족하고, 사물의 파손
위험도 있다. 의자, 선풍기, 시계, 자전거 등 제한된 공간 안에 적절한 유품을 배치하고,
남겨진 흔적과의 조우
투명한 줄을 이용해 사물을 공중에 띄우는 것이 핵심이다. 옛 초가집을 개조한 집은 공
박승만 작업의 모티프는 할아버지가 남긴 집과 그 안에 있던 유품들이다. 그 광경과 조 간이 상당히 비좁다. 다음 촬영을 위해서는 기존에 설치한 것을 해체하고, 새로운 것을
우한 그는 문득 현실세계와 격리된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주인을 잃고 용도를 다시 설치하는 일을 반복해야 한다. 여간 고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상실한 사물들은 물질적 형태를 유지하고는 있지만, 마치 망자처럼 죽음과 맞닿아 있 야외에서 촬영할 때는 셔터스피드를 활용하기도 한다. 한 장의 사진을 포착하기 위해
는 듯 보였다. 그때의 감정을 이미지로 옮기기 위한 작업의 시작은 바로 ‘사전답사’다. 촬영 스태프가 최소 20~30회 가량 공중에 사물을 띄운다. 이불 사진이 그 예다. 설치와
이후 촬영이 진행될 공간과 사물을 정하고, 스태프와 간단한 회의를 거친 뒤 본격적으 순간 포착 외에도 눈여겨봐야 할 것은 사물의 미묘한 위치변화를 통해 만들어내는 효과
로 작업에 돌입한다. 다. 배치를 미묘하게 비틀어 부유하는 듯 또는 부유하진 않지만 오묘하게 보이도록 연
예전부터 카메라에는 ‘대상의 영혼을 잡아놓는다’라는 미신적 의미가 있었다. 그러나 출한다. 이 작업의 가장 큰 애로사항은 제한된 공간 안에서 제한된 사물로만 작업하는
박승만의 작업은 영혼을 붙잡아 놓는다기보다는, 각각의 사물이 가진 의미를 알아보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어떠한 장소에 어떤 사물이 어울리는지, 또 어떻게 하면 작가가 이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비록 죽은 이의 유품이지만, 이 사물은 남겨진 형태 그 자체로 야기하는 바를 잘 끌어낼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많다. 촬영이 끝나면 작업실로 돌아
도 본디 부여된 용도에 맞게 사용될 수 있음을 인지했다. 사물이 죽은 것 같지만, 사실 와 결과물을 확인한 뒤 간단한 후보정으로 완성도를 높인다.
죽은 게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서서히 박승만은 사물과 물리적인 접촉을 했
박승만 삶과 죽음, 이승과 저승, 현실과 가상이라는 경계 위에서 공간과 사물의 관계를 살펴보는 작업을
다. 사물이 놓여 있던 공간과는 다른 공간으로 이동시켜 촬영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한다. 계원예술대학교 사진예술과를 졸업한 뒤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조형예술과 예술전문사(석사)
망자가 떠난 후 사물은 남겨졌지만, 여전히 현실의 물리적 성질과 맞대응하고 존재한 과정에 재학 중이다. 2016년 미래작가상을 수상했다. seungmanpark.com
한 장의 사진을 포착하기 위해 20~30회 가량 공중에 사물을 띄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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