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8 - 월간사진 2019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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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웡   이자랑은 제주4·3사건 희생자와 그 사건의 기억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
                                                                              로하고, 당시 증언을 알리기 위해 기획된 책이다. 제주 출신 작가 현선의 사진

                 끝나지                                                      에 현림의 희곡 대본이 더해졌다. 제주4·3사건을 폭동으로 명명하려던 권력 때문에
                                                                          아무것도 새기지 못한 ‘4·3백비’를 상징하는 책 표지가 인상적이다.
                                                                          제주에서 태어난 현선은 어느날 자신의 뿌리에 대해 생각해보았다고 한다. 알면 알
                 않은 비극                                                    수록 부채감이 점점 커져만 갔다. 그러던 중 때마침 제주4·3사건이 70주기를 맞이

                                                                          했다. 그길로 연극배우인 동생 현림과 의기투합했다. 퍼포먼스와 설치로 시작한 협
                                                                          업은 사진과 희곡 대본의 만남으로 이어졌다. 그 결과물이 바로 <웡이자랑>이다. 작
                 현선                                                       업을 위해 다양한 책을 참고했고, 희생자 가족을 비롯해 학살터 현장에서 들은 동네
                                                                          어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대본으로 다시 태어난 4·3 이야기는 장소성을
                                                                          드러내는 데 안성맞춤인 사진과 만나 한결 완성도 높은 메시지를 전달한다.


                                                                          사진가 노순택은 “강정은 제주4·3의 연장선이다.”라고 말했다. 강정뿐이랴. 오랜
                                                                          시간 너무 많은 사람들이 국가와 싸웠고, 또 희생됐다. 그런데 국민의 체감 수준은
                                                                          미미하다. 주요 미디어들이 지방에서 일어나는, 정치적으로 예민한 문제를 자세히
                                                                          다루지 않는 탓이다. 7천 명에 달하는 유족들의 증언을 기록한 제주일보 기자 김종
                                                                          민이 유일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선은 김종민의 글을 읽으면 마음이 아프다
                                                                          고 한다. 하지만 현선은 가슴 아픈 사진은 찍지 않겠단다. 당시 현장에 없던 자신에
                                                                          게는 그 마음을 담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반쯤 죽은 사람의
                                                                          태도를 견지하며 모든 의도를 숨기고 촬영에 임했다. 또한, 모든 촬영을 (반쯤 죽은)
                                                                          유통기한이 지난 필름으로 진행했다. 그의 사진이 직접적이지 않고, 묘한 이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현선 사진에서 슬픔을 읽을 수 있다. ‘아직 끝나지 않은,
                                                                          다시 겪고 싶지 않은, 굳이 이야기하고 싶지 않지만, 하지 않을 수 없는’ 불편함과 아
                                                                          픔이 사진에 담겨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레이어를 겹겹이 쌓는다 한들, 애처로운 감
                                                                          정은 숨기지 못했을 것이다. 제3자인 우리는 ‘아직 끝나지 않은 비극’을 어떻게 마주
                                                                          해야 할까. ‘제주 자장가’를 의미하는 ‘웡이자랑’처럼, 사건을 되돌아보고, 희생자의
                                                                          넋을 기리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만으로도 그들에게 위로가 될 수 있을까. 그보다 먼
                                                                          저 <웡이자랑>을 통해 왁왁(캄캄)했던 우리의 귀와 눈을 트는 것은 어떨까 싶다.



























                                                                                현선은 반쯤 죽은 사람의 태도를 견지하며
                  삼도동 조일구락부(구 제주극장)
                 당시 유일한 극장시설로 각종 단체 결성이 이곳에                                     모든 의도를 숨기고 촬영에 임했다.
                 서 이뤄졌다. 4·3의 대표적인 그룹인 민주주의 민
                 족전선 제주도위원회, 도민들을 잔인하게 탄압한                                      또한, 모든 촬영을 (반쯤 죽은) 유통기한이 지난
                 서북청년단 모두 이곳에서 결성됐다. 제주4·3의
                중요한 유적이 되는 이곳은 2018년 12월 31일 철
                    거됐다. 사진은 2019년 1월 1일 촬영된 것.                                 필름으로 진행했다. 그의 사진이
                                                                                직접적이지 않고, 묘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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