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2 - 월간사진 2019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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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919년 4월 11일                                                경    술국치, 1910년 8월 29일은 우리나라 역사상 처음으로 국권을 상실
                                                                                    한 ‘국가 치욕의 날’이다. 나라를 잃은 뒤 1919년 3월 1일 독립선언
                                                                               발표를 시작으로 서울과 평양, 중국 간도,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미국 한
                                                                               인사회 등지에서 독립만세시위와 독립선언이 일어났다. 독립을 향한 열망
                                                                               은 임시정부 수립으로 이어졌다. ‘대한민국임시정부’는 3·1 운동을 계기로
                                                                               일제 식민통치를 부인하고, 조국 광복을 위해 4월 11일 중국 상해에 수립
                                                                               한 임시정부다. 국권 강탈 이후 9년 만에 우리 민족을 대표하는 정부이자,
                                                                               군주제가 아닌 3권 분립에 입각한 민주공화정체의 정부였다. 2018년까지
                                                                               는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기념일’이 4월 13일이었지만, 역사학계 자료와
                                                                               의견에 따라 올해부터 4월 11일로 변경됐다.

                                                                               대한민국임시정부는 독립 운동의 중추 역할을 했다. 가장 먼저 ‘비밀 행정
                                                                               조직망’을 건설했다. 국내와 임시정부를 연결하기 위해서다. 또한, 정부 문
                                                                               서와 명령을 전달했던 ‘연통제’와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하는 ‘교통국’을 조
                                                                               직했으며, 상하이에 ‘육군무관학교’를 설립, 군사 활동을 통한 대일항쟁을
                                                                               준비했다. 이와 더불어 민족의 독립을 주장하는 외교활동과 독립의식을 고
                                                                               취시키기 위해 ‘독립신문’을 배포했다.


                                                                               가장 대표적인 건 ‘한인애국단’이다. 일제의 이간질로 소원해진 중국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일본 주요 인물을 암살하려는 목적으로 1931년 조직됐
                                                                               다. 김구를 중심으로 김석, 안공근, 이수봉, 이유필이 간부로 활동했고, 유
                                                                               상근, 유진만, 윤봉길, 이덕주, 이봉창, 최흥식 등이 단원으로 참여했다. ‘한
                                                                               인애국단’ 활동의 시작은 이봉창이 알렸다. 1932년 1월 8일 이봉창은 도쿄
                                                                               에서 폭탄을 터트려 일왕을 암살하려 하다가 실패했고, 그해 10월 사형에
                                                                               처해졌다. 비록 성공하진 못했지만, 이는 항일투쟁의 활력소가 되었고, 중
                                                                               국 신문은 ‘불행히도 명중시키지 못했다’고 대서특필했다. 같은 해 4월 29
                                                                               일 윤봉길은 선서문을 쓰고 상하이 훙커우공원(虹口公園)으로 향했다. 일
                                                                               왕 생일 행사장에 있는 일본군 장교들을 암살하기 위함이었다. 7명을 살상
                                                                               한 윤봉길은 현장에서 체포돼 처형됐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제로 한다.





                                                                        대한민국의 인민은

                                                                        남녀 귀천 급 빈부의 계급이 무하고

                                                                        일체 평등하다.








                               김구 선생과 윤봉길 의사 (자료제공=매헌 윤봉길 의사 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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